하.경.삶

스 7:1-10 (에스라가 돌아왔다) 본문

疎通 2 (with YHWH)/Quiet Time

스 7:1-10 (에스라가 돌아왔다)

에제르 2018. 4. 10. 00:30


* 에스라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이 다스리던 때에

 에스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라야이고, 할아버지는 아사랴이며, 

 그 윗대는 힐기야요, 그 윗대는 살룸이요 ~~~~~

 그 윗대는 대 제사장 아론이다


 바로 그 에스라가 바빌로니아에서 돌아왔다

 그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주신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학자다 

 주 하나님이 그를 잘 보살피셨으므로

 왕은 에스라가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주었다 


 아닥사스다 왕 칠년에

 일부 이스라엘 자손들과 몇몇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과

 성전 막일꾼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에스라도 그들과 함께 올라왔다 


 그가 예루살렘에 닿은 것은

 왕이 다스린 지 칠년이 된 해의 다섯째 달이다 

 그가 바릴로니아를 떠난 것은

 첫째 달 초하루이다

 하나님이 그를 잘 보살펴 주셔서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닿을 수 있었다 


 에스라는

 주님의 율법을 깊이 연구하고 지켰으며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였다 




에스라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학자

하나님이 그를 잘 보살피셨다

주님의 율법을 깊이 연구하고 지켰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였다


깊이 연구하고

지키고

가르치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지키고, 가르치는 일에 모두 고루 힘써야 한다.

실천이 없는 학문 연구와 가르침은 의미가 없다. 아니 쓸모가 없다.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스스로도 지키지 않는 학문이 누구를 변화시키고 지키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 28:20)


말씀을 연구한 사람은 그 깊이를 더할 수록 실천적 삶의 깊이도 더할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신학교 교수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지 모르겠다.

에스라는 그 지식을 신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제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학위나 학벌에 연연하지 말고, 교수라는 타이틀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잘 가르쳐야 할 것이다.

몇몇 신학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중요하다.

성경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은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배우고 가르친대로 지키며 살기 위한 것이다.

묵상의 정점은 적용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목사나 신학교 교수나 이건 뭐 그저 장사치나 양아치에 불과한 집단들 같다.

그들의 삶이 그들의 학문의 깊이를 증명한다.

지금 신학교나 교회의 모습이 그들의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잘 보살피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어버려 두시는 것이다.


배운대로 살아라

가르친대로 살아라

배우고 지키고 그 다음에 가르쳐라

자기도 못하는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강요하지 말라

자기들도 못가는 하나님 나라를 성도들도 못가게 막고 있다.


목사가 없어야 교회가 산다.

목사가 없어야 예수가 산다.

목사가 없어야 말씀이 산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지키며, 또한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목사든 아니든 그 타이틀이 중요한 게 아니다. 목사 안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전 건축이 끝나고 이제 에스라를 부르셨다.

성전은 형식이고 말씀은 본질이다.

말씀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진실로 우리에겐 여전히 목사가 아닌 에스라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