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예레미야애가 3:1-18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본문
애 3:1-18 (새번역)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비유)
-. 진노의 몽둥이 (3:1)
-. 엎드리어 노리는 곰 (3:10)
-. 몰래 숨어서 노리는 사자 (3:10)
이스라엘 백성들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죽음의 그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보살펴 주심으로 두려움이 없다고(시 23:2, 4 새번역) 고백하던 그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이제 진노의 몽둥이로 변했다.
더 이상 쉴 곳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보살펴 주시지도 않으신다. 오히려 빛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헤매게 하시고 온종일 손을 들어서 치고 또 치신다(3:2).
나를 노리는 곰, 사자로 비유하고 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삼상 17:34-35)
양떼의 새끼를 움켜짐으로 다윗이 쳐 죽이던 맹수 아니던가?...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 사람에 비유되던 곰, 사자 아니던가?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삼상 17:37)
가증스러운 이방의 우상이 아니던가?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왕상 11:5)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이 아니었던가?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잠 28:15)
하나님이 바로 이와 같은 곰, 사자로 비유되고 있다.
연약하고 힘이 없는 양떼의 새끼를 노리는, 자신들의 원수, 압제하는 악한 관원, 가증스러운 우상의 모습의 하나님이다.
이런 하나님에게 더 이상 의지할 것도 소망도 없어졌다. "주님께 두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3:18)
나에게 있어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시는가? 나의 삶 가운데 어떤 모습의 하나님으로 머무시고 계시는가?
나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 오실까?
나의 죄악에 대하여도 영원히 언제나 온화한 사랑의 모습으로 계실까?
두렵지 않나? 떨리지 않나? 칭의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죄함 없다고 선포하며 여전히 내 삶은 죄 가운데 살 수 있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마지막 희망도 없어진 것일까? 하나님은 그런 분일까? 분노와 심판과 재앙으로 마무리되는 것일까?
더 이상 기회를 주시지 않을까? 그들의 탄식과 슬픔과 절규와 부르짖음과 손을 들어 비는 것을 모른척 하실까?
이제 남아 있는 희망은 무엇일까? 누구에게 어디에다가 희망을 두어여 하나? 다른 누구를, 대상을, 신을 찾아야 하는걸까?
이 모든 질문이 오늘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이 질문에 나는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대답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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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사자로 부터 지켜 주시던 분이 곰과 사자로 변하고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보호해 주시던 지팡이와 막대기가 진노의 몽둥이로 변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죽은지 오래된 사람처럼 되었으며 활이 아니라 활의 과녁이 되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 영광도 사라지고 희망도 사라졌다.
그러나 irony 하게도 결국 나는 바로 그 몽둥이에게로 피하여야 한다.
그 곰과 사자에게로 피하여야 한다.
그 분 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 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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