疎通 2 (with YHWH)/Quiet Time
사도행전 21:1-16 (주님의 뜻)
에제르
2011. 10. 6. 00:20
두로 | 제자들 | 성령의 지시를 받음 |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말함 |
가이샤라 빌립의 집 | 아가보라는 예언자 유대에서 내려옴 |
성령의 말씀을 들음 | 유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바 울을 묶어서 이방 사람의 손에 넘겨 줄 것 |
제자들이 성령의 지시를 받아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말한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바울의 고난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길을 떠난다
아가보도 역시 예루살렘에서의 바울의 고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성령의 말씀을 전하며 또 간곡히 만류한다.
그러나 버울은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것까지도 각오하며...
두 경우 다 성령의 말씀이라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성령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바울은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했을까, 아니면 자기의 뜻대로 가야 했을까...
성령은 왜? 제자들에게 바울의 고난에 대해 바울에게 경고하라고 했을까...
제자들은 성령의 말씀만 전하라고 했는데, 혹시 오바해서 간곡히 만류까지 한 것일까...
그렇다면 성령의 음성을 전한 제자들이 그 뜻까지 왜곡해서 전한 것일까...
성령은 고난을 전했고, 그러나 그럼에도 고난을 뚫고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이것이 정답일 것이다.
때로 성령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고난을 듣더라도,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고난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울며 기도할 수 밖에 없을때도 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울은 정확히 그 뜻을 알았고, 성령의 말씀의 뜻도 알았다.
고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 고난을 마주쳐야 함도 주님의 뜻임을 알았다.
그는 피하지 않았고, 죽음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뜻임을 잊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죽음에까지 순종하였다.
주님의 뜻이, 성령의 음성이 항상 좋은 것만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만사형통만을 말씀하시지 않을 것이다.
성령의 음성은 복음을 향한, 구원을 위한 우리의 결단을 요구할 것이다.
고난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지 물을 것이고, 우리의 믿음의 결단을 물을 것이다.
피할 것인가...따를 것인가...우리의 결단만 남았다.
어떻게 하든...주님의 뜻은 이루어 질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이렇게 믿음의 행동과 결단으로 지켜질 것이고, 또한 믿음은 이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라고....
믿음의 결단과 순종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도록 저를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