疎通 2 (with YHWH)/Quiet Time
마태복음 9:14-26 (새 포도주, 새 가죽 부대)
에제르
2010. 1. 20. 15:17
마 9:14-26 (새번역)
* 대조
-. 생베조각 ↔ 낡은 옷 새 가죽 부대 ↔ 낡은 가죽 부대
*
* sandwitch
-. 9:18-19 / 9:20-22 / 9:23-26 (지도자 한 사람의 딸 이야기 / 혈루증 여인 / 지도자 한 사람의 딸 이야기)
유대인들이 의로운 행위로 생각하는 것들...기도, 금식, 구제...
또 금식 논쟁이다...이번에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아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다그친다...
우리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예수 제자들은 왜 금식을 하지 않느냐...
그들은 금식을 왜 하는지...그 대상은 누구인지...그리고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그들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유대주의적인 종교적 습관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 습관대로 금식을 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얼굴에 슬픈 표정을 지으며, 드러내 놓고 형식적인 금식을 하였다.
예수님은 그 금식의 주인이시다. 그 대상이시다. 그 주체이시다. 그 금식을 받으시는 분이시다.
바로 그 분이 그들의 눈 앞에 계시는데, 그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깨닫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게 되었다.
구습은 폐기되고 새로운 법이 탄생되었다. 새 영과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 (겔 36:26). 율법의 완성으로 오셨다.
그들이 여지껏 했던 것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그림자였고, 상징이었고, 모형이었다.
이제 실재이신 그 분이 우리 가운데 오셨다. 그는 참 빛이요, 하나님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 실체를 보지 못했다. 구태의연한 구습에 따른 종교적 행위에 가치를 두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새창조하시고, 새로운 언약으로, 새 영과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다.(고후 5:17). 옛 것은 지나갔다. 이것이 새 포도주이다. 이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지금의 신앙생활이 유대주의자들과 같은 신앙생활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율법적인, 문자적인, 기복적인, 형식적인 종교행위들이나 주술적인 행위들이 마치 믿음인 것처럼 하고 있지는 아닌지...
믿음의 본질은, 믿음의 완성은, 믿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 그림자나 모형을 보며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신앙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내가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과 같은 신앙생활을 가지고 있음으로 정작 내가 바로 보고, 깨달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내가 거듭남으로 새 피조물이 되어, 새롭게 되어, 주님이 내 안에 주시는 새 영과 새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 믿음이 나를 영과 육에서 구원할 것이요, 죽음에서 나를 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나와 영원히, 흔들림없이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기적이 믿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만든다.
* 대조
-. 생베조각 ↔ 낡은 옷 새 가죽 부대 ↔ 낡은 가죽 부대
*
지도자 한 사람 | 딸이 죽었음 |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 오. 그러면 살아날 것입니다 |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
여자 | 열두 해 동안 혈루증 앓음 |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텐데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 sandwitch
-. 9:18-19 / 9:20-22 / 9:23-26 (지도자 한 사람의 딸 이야기 / 혈루증 여인 / 지도자 한 사람의 딸 이야기)
유대인들이 의로운 행위로 생각하는 것들...기도, 금식, 구제...
또 금식 논쟁이다...이번에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아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다그친다...
우리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예수 제자들은 왜 금식을 하지 않느냐...
그들은 금식을 왜 하는지...그 대상은 누구인지...그리고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그들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유대주의적인 종교적 습관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 습관대로 금식을 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얼굴에 슬픈 표정을 지으며, 드러내 놓고 형식적인 금식을 하였다.
예수님은 그 금식의 주인이시다. 그 대상이시다. 그 주체이시다. 그 금식을 받으시는 분이시다.
바로 그 분이 그들의 눈 앞에 계시는데, 그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깨닫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게 되었다.
구습은 폐기되고 새로운 법이 탄생되었다. 새 영과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 (겔 36:26). 율법의 완성으로 오셨다.
그들이 여지껏 했던 것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그림자였고, 상징이었고, 모형이었다.
이제 실재이신 그 분이 우리 가운데 오셨다. 그는 참 빛이요, 하나님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 실체를 보지 못했다. 구태의연한 구습에 따른 종교적 행위에 가치를 두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새창조하시고, 새로운 언약으로, 새 영과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다.(고후 5:17). 옛 것은 지나갔다. 이것이 새 포도주이다. 이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지금의 신앙생활이 유대주의자들과 같은 신앙생활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율법적인, 문자적인, 기복적인, 형식적인 종교행위들이나 주술적인 행위들이 마치 믿음인 것처럼 하고 있지는 아닌지...
믿음의 본질은, 믿음의 완성은, 믿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 그림자나 모형을 보며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신앙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내가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과 같은 신앙생활을 가지고 있음으로 정작 내가 바로 보고, 깨달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내가 거듭남으로 새 피조물이 되어, 새롭게 되어, 주님이 내 안에 주시는 새 영과 새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 믿음이 나를 영과 육에서 구원할 것이요, 죽음에서 나를 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나와 영원히, 흔들림없이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기적이 믿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