疎通 2 (with YHWH)/Quiet Time
마태복음 11:20-30 (모두 내게로 오너라)
에제르
2010. 1. 28. 01:08
마 11:20-30 (새번역)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 → 모두 내게로 오너라 →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 - 유대인의 어깨를 더욱 더 무겁게 만드는 율법의 짐(장로들의 유전)
하나님을 섬김은 어디가고 율법주의 형식만 남은 유대인들...
율법의 보다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버리고, 외식하는 위선자로서 형식적인 기도와 금식과 구제만 남은 껍데기 신앙...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하지 말라는 600여개의 율법 세부 시행규칙만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더욱 힘들게 만든 유대 지도자들...
율법은 그림자요, 죄를 알게하는 역할을 할 뿐인데, 그 율법이 신앙이 중심이 되어버린, 하나님의 자리를 오히려 차지해 버린,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오히려 율법을 더 섬기게 되어 버린 그들의 신앙...
예수님은 온전하게 자유케 하는 주님의 멍에(스승과 제자와의 관계 상징)를 메고 배우라고 하신다.
[ 마태가 이해한 예수님의 멍에는 법전(code)에 충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며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구속과 하나님과 연합을 위한 투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안식과 구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분(예수)에게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쉼과 멍에는 동일한 축복을 그린 두 개의 그림이다. 이 멍에를 우리 위에 멤으로써 우리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는 자에게 쉼을 주는 멍에인 것이다
멘다는 것은 토라의 멍에와 대조되는 예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
예수님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시다.
[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셨으며, 하나님께 헌신하셨다는 사실을, 동시에 주님은 사람에게도 겸손하셔서 그들의 종이자 조력자로 되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주님을 따를 때 그들에게 종말론적 안식을 주신 까닭이다. ]
유대 지도자들이, 율법주의자들이 짊어지게 한 무거운 율법의 짐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영원한 참된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멍에는 편하다. 자유함을 주신다.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따른다.
주님이 주신 짐은 가볍다. 누구나 메고 다닐 수 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따른다.
주님을 따르면, 주님의 멍에를 메면, 주님이 주신 짐을 지면, 주님께 배우면 내 마음이 영원한 참된 안식을 누릴 것이다.
내 영혼이 주의 은혜를 입을 것이다.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율법주의적인 신앙으로,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교회에 대한 열심으로,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형식적인, 위선적인 신앙생활...기복적인 신앙생활...은 없는지 점검해 본다.
내 삶이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그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내 삶 속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주님 안에서, 주님으로 인해, 주님이 주시는 침된 마음의 안식, 영혼의 안식을 누리길 소망한다.
마음의 쉼은, 영혼의 안식은, 참된 안식은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내가 자꾸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요즘 우리들은 너무 교회 일에, 사역에, 봉사에, 각종 프로그램에 치여서 혹사 당함으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또 지게 함으로, 교회 안에서 또 하나의 율법주의가 팽배한 것은 아닐까.......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 → 모두 내게로 오너라 →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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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 - 유대인의 어깨를 더욱 더 무겁게 만드는 율법의 짐(장로들의 유전)
하나님을 섬김은 어디가고 율법주의 형식만 남은 유대인들...
율법의 보다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버리고, 외식하는 위선자로서 형식적인 기도와 금식과 구제만 남은 껍데기 신앙...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하지 말라는 600여개의 율법 세부 시행규칙만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더욱 힘들게 만든 유대 지도자들...
율법은 그림자요, 죄를 알게하는 역할을 할 뿐인데, 그 율법이 신앙이 중심이 되어버린, 하나님의 자리를 오히려 차지해 버린,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오히려 율법을 더 섬기게 되어 버린 그들의 신앙...
예수님은 온전하게 자유케 하는 주님의 멍에(스승과 제자와의 관계 상징)를 메고 배우라고 하신다.
[ 마태가 이해한 예수님의 멍에는 법전(code)에 충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며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구속과 하나님과 연합을 위한 투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안식과 구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분(예수)에게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쉼과 멍에는 동일한 축복을 그린 두 개의 그림이다. 이 멍에를 우리 위에 멤으로써 우리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는 자에게 쉼을 주는 멍에인 것이다
멘다는 것은 토라의 멍에와 대조되는 예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
예수님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시다.
[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셨으며, 하나님께 헌신하셨다는 사실을, 동시에 주님은 사람에게도 겸손하셔서 그들의 종이자 조력자로 되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주님을 따를 때 그들에게 종말론적 안식을 주신 까닭이다. ]
유대 지도자들이, 율법주의자들이 짊어지게 한 무거운 율법의 짐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영원한 참된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멍에는 편하다. 자유함을 주신다.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따른다.
주님이 주신 짐은 가볍다. 누구나 메고 다닐 수 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따른다.
주님을 따르면, 주님의 멍에를 메면, 주님이 주신 짐을 지면, 주님께 배우면 내 마음이 영원한 참된 안식을 누릴 것이다.
내 영혼이 주의 은혜를 입을 것이다.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율법주의적인 신앙으로,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교회에 대한 열심으로,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형식적인, 위선적인 신앙생활...기복적인 신앙생활...은 없는지 점검해 본다.
내 삶이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그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내 삶 속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주님 안에서, 주님으로 인해, 주님이 주시는 침된 마음의 안식, 영혼의 안식을 누리길 소망한다.
마음의 쉼은, 영혼의 안식은, 참된 안식은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내가 자꾸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요즘 우리들은 너무 교회 일에, 사역에, 봉사에, 각종 프로그램에 치여서 혹사 당함으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또 지게 함으로, 교회 안에서 또 하나의 율법주의가 팽배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