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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기독교 본문

疏通 1 (with Me)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기독교

에제르 2011. 3. 3. 15:41

그리스도만으로충분한기독교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신학/기독교사상 > 신학일반
지은이 존 맥아더 (부흥과개혁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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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존 맥아더/생명의 말씀사" 를 읽고 나서 탄력을 받아 집어든 '존 맥아더'의 책...

전에 '부족한 기독교' 세트(3권)를 읽어 보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미루었던 적이 있었다. 한 목사님이 별로라고 추천하지 않으시기도 했지만...

심리학, 마케팅,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옥성호/부흥과 개혁사)...3 권

'그리스도인으로 충분한 기독교'...이 책도 아마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쓴 책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내적 치유', '기독교 상담' 뭐 이런 것들이 유행처럼 입에 오르내릴 때부터 별로 내키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었는데, 혹 그것들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읽기 시작한다.

이 책이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좋은 통찰력과 이해를 주기를 기대해 본다.



아래 글은 이 책 '글을 열며'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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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는 탁원한 풍자가 담긴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에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인간 '환자'로 하여금 성경적인 기독교를 실천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견습생 악마인 웜우드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상상했다.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네가 맡은 환자가 속해 있는 패거리는 순전히 기독교적이라는 게 정망 문제야. 물론 각자 관심사는 다 다르겠지만 그 패거리를 서로 연결하는 끈은 아직도 순전한 기독교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 우리가 원하는 건 그 녀석들이 계속해서 내가 '기독교와 그 무엇'이라고 부르는 정신 상태를 갖게 하는 거다. 이를테면 기독교와 위기, 기독교와 신 심리학, 기독교와 신 질서, 기독교와 신유, 기독교와 정신 연구, 기독교와 채식주의, 기독교와 맞춤법 개정 같은 식으로 말이야. 그놈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박에 없다면 적어도 그놈들을 서로 다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라. 믿음 자체를 일종의 기독교적인 색채가 나는 유행으로 대체하는 거야.....

사상적인 유행을 이용하면 인간들이 진짜 위험한 것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단다. 각 시대의 여론을 조종해서 가장 덜 위험한 악에는 반대하지만 우리가 퍼뜨리려는 악과 가장 가까운 미덕에는 찬성하게 만드는 거야. 홍수가 나면 사람들이 다들 소하시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만들고 배에 탄 인간들이 전부 벌써 거의 물속에 잠겨 있는 쪽으로 몰려가게 만드는 작전이지. 이를테면 우린 사람들이 모두 실제적으로 세속적이고 뜨뜻미지근하게 변해 가고 있는 순간에는 광신주의의 위험을 폭로하는 일을 유행으로 만들지. 또 한 세기쯤 뒤에 우리가 실제로 인간들을 전부 감정에 취한 바이런 같은 낭만주의자로 만들었을 때는 단순한 '이해'
의 위험성을 반대하도록 여론을 몰고 가는 거구. '감상적인 태도'를 방지하려면 잔인한 시대를 만들고, '예의염치'를 방지하려면 무책임하고 나태한 시대를 만들고, '청교도주의'를 방지하려면 음란한 시대를 만드는 거지. 그리고 모든 인간이 실제로 급격하게 노예나 폭군으로 변해 갈 때마다 우린 '자유주의'를 주적(主敵)으로 만들지.

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가 거둔 가장 큰 승리는 지식인들의 헛소리로 의지의 타락을 부추길 수 있게 '허구한 날 똑같은 것'에 대한 이런 공포를 철학으로 승격시킨 거야. 현대 유럽사상(일부는 우리 작품이지)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진화론적인 특징 내지 역사적인 특징은 바로 이 대목에서 아주 쓸모가 있단 말이야. 우리의 원수[스크루테이프가 생각하는 하나님]는 진부한 걸 좋아해. 내가 아는 한 그는 우리가 제안한 행동 방침에 대해 사람들이 아주 단순한 질문을 하길 원하지. 이 일이 올바른 일인가? 분별 있는 일인가?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인간들을 '이 일이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대세와 일치하는가? 이 일이 역사의 진행 방향인가?' 라고 묻게 만들 수만 있다면 인간들은 실제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소홀히 하게 될거야.  그리고 인간들이 실제로 묻는 그런 질문들은 물론 대답할 수가 없는 거지. 왜냐면 인간들은 미래를 알지 못하는 데다가 미래거 어떻게 될지는 대체로 그들이 지금 내리는 결정에 의존하는데 그들은 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얻으려고 제멋대로 상상하거든. 그러니까 인간들의 마음이 이런 진공상태에서 갈팡질팡하는 동안에 우리에겐 인간들의 마음속에 살며시 들어가 그들이 우리가 결정한 행동을 하도록 조종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가 생기는 거지. 우린 벌써 중대한 일을 해치웠어. 한때 인간들은 어떤 변화는 긍정적이고, 어떤 변화는 부정적이고, 또 어떤 변화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 우린 이제 이런 지식을 거의 없애 버렸어. 그리고 '변하지 않은' 이라는 서술 형용사를 '정체된' 이라는 감정적인 형용사로 바꿔 버렸지. 우린 인간들이 미래를 직업과 신분을 막론하고 모두가 1시간에 60분이라는 속도로 도달하는 그 무엇이 아닌, 특별한 영웅들이나 획득하는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하도록 훈련시켜 온 거야.      

너를 사랑하는 삼촌 스크루테이프가


이 글은 사탄이 오늘날의 교회에 대해 구사하면서 최대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전략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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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교회에 대한 신 영지주의의 공격

오늘날의 교회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의 주요 경향, 즉 심리학, 실용주의, 신비주의는 바야흐로 신 영지주의가 득세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현대 교회의 규모를 감안하면 오늘날의 신 영지주의는 1세기의 영지주의보다 더 광범위한 위협이 되고 있다. 더구나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영지주의 이단에 단결해서 반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분성을 지적함으로써 영지주의에 맞섰다(골 2:10). 그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 세 가지 영지주의의 영향에 대해 각각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또 그런 영향이 어떻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충분성에 도전하고 있는지를 살펴조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에게 유효한 영적인 원천에 대해 논할 것이다.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독자들은 성경은 충분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하다, 하나님의 지혜는 충분하다, 하나님 자신은 충분하다, 등 몇 가지 반복되는 강조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서로 중첩되는 충분성은 우리의 부족함이 없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소유인 막대한 유업의 놀라운 부요함을 보여 준다.

존 맥아더의 글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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