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성경의 단어 이해 본문

疎通 2 (with YHWH)/Grasping His Story

성경의 단어 이해

에제르 2011. 12. 2. 00:04

저자가 어떤 용어를 같은 책에서 혹은 다른 책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비교하여 그 단어의 특정 의미를 확정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울이 빌립보서 2:12에서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했는데, 바울이 "이루라"(work out)라는 용어를 다른 곳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 비교하면 여기에서 이 구절에서 바울이 의미한 것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공로에 의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립했는데, "이루다"라는 용어는 바울이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사용된 그 용어가 아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명사 ergon과 ergazomai 를 사용한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 2:12에서 동사 katergazomai 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바울서신에서 총 20회 나온다. 그런데 이 20회 중 어떤 경우도 공로나 무엇인가를 획득한다는 개념이 없다.

바울이 이 용어를 사용했을 때 그 뜻(sense)는 다음의 두 본문에서 볼 수 있다.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롬 15:18)


"행한"과 "역사하신"이라는 동사는 바울이 빌립보서 2:12에서 사용한 것과 동일한 동사이다. 이 두 보기에서 분명한 것은 바울이 공로나 어떤 것을 획득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도의 표는 바울이 획득한 것이 아니라 "나타난"(manifested) 것이거나 "드러난"(demonstrated)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바울의 설교를 통해 이방인의 구원을 획득하거나 공로를 세운 것이 아니다. 여기나 다른 곳에서 바울이 이 용어를 사용한 용법을 통해 명백해진 것은 빌립보서 2:12, "너의 구원을 획득하고 구원을 위해 일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단어를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미 너희가 가진 구원의 결과를 드러내고 전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한다.





한 단어의 의미가 그 단어가 있는 문단에서 분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야고보서 2:14-26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함이 아닌 오직 은혜에 의한 것이라는 바울의 명백한 가르침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관련해 큰 혼란이 있다. 언어규범(norms of language)의 범위 안에서 이 두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여럿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야고보와 바울이 "믿음"과 "행함"이라는 용어를 통해 의미한 것을 연구하면 그들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은 야고보에 의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2:14), 믿음의 공동체 안의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믿음(15-16),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17,26),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과 같은 사실을 믿는 지적인 믿음(19a), 귀신들도 가진 믿음(19b). 야고보 자신은 2:14에서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말하며 이러한 이지적 동의(mental assent)를 참된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다.  
야고보가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말하지 않고 "내가 언급했던 종류의 믿음, 선한 행위로 이어지지 읺는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말했던 것을 주의해서 보라. 당연히 대답은 "아니오, 그런 믿음, 심지어 귀신도 가진 그런 믿음은 구원하지 못한다"이어야 한다. 언어규범(norms of language)의 범위 안에서 야고보에게 "믿음"이라는 용어는 심지어 귀신도 가진 단지 이지적 동의를 의미한다. 귀신들도 자신들이 야고보서 2:14-26에 사용된 차원에서 "믿는다"는 것을 알며 이지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단지 이지적 동의가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과 그의 구원의 은헤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이다.

야고보가 "행함"이라고 했을 때 이것의 의미는 바울이 의미한 것과도 다르다. 바울의 경우 행함은 오만을 자아내고, "삯"을 얻고, 하나님을 빚진 자로 세운다(롬 4:2-4).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행함은 "율법의 행위"(works of law)와 관련이 있는데 이방인이 할례받는 것, 안식일과 유대교의 종교적 기념일을 지키는 것, 음식법을 지키는 것이 그 핵심 요소이다.
한편 야고보가 행함을 말할 때 그는 헐벗은 자를 입히고 배고픈 자를 먹이는 것이다(2:15-16). 행함은 한 사람의 믿음을 드러내고(18), 아브라함과 라합의 경우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21-23,25).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믿음의 자연스럽고 필요한 결과이다. 야고보와 바울이 "믿음"과 "행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문단을 통해 독자들은 그들이 이용어를 통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성경 해석학 / 로버트 H. 스타인 / CLC ]   

 
성경해석학성경해석의일반적규칙과각권의개별규칙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지은이 로버트 H. 스타인 (CLC,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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