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행 10:1-16 (경건한 사람 고넬료) 본문

疎通 2 (with YHWH)/Quiet Time

행 10:1-16 (경건한 사람 고넬료)

에제르 2018. 1. 25. 00:30

 

 가이샤라에 고넬료라는 사람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

 경건한 사람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어느 날 오후 세 시쯤에

 그는 환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천사를 똑똑히 보았다 

 

 천사

 고넬료 

 고넬료야

 천사님, 무슨 일입니까? 

 네 기도와 자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

 이제,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을 데려오너라

 그는 무두장이인 시몬의 집에 묵고 잇는데, 그 집은 바닷가에 있다 

 하인 두 사람과 자기 부하 가운데서 경건한 병사 하나를 불러서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고, 그들을 욥바로 보냈다 

 

 이튿날 저들이 길을 가다가

 욥바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때는 오정쯤이었다

 그는 배가 고파서, 무엇을 좀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에

 베드로는 황홀경에 빠져 들어갔다

 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가 끈에 매달려서

 땅으로 드리워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는 온갖 네 발 짐승들과 땅에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

 이 골고루 있었다

 

 그 때에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주님, 절대러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두 번째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깨끄사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뒤에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서 올라갔다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에 있다.

이방인 고넬료도 유대교로 개종한 것은 아니다. 할례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경건한 사람,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선을 많이 베풀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다.

천사의 말이 그것을 확인해 준다. "네 기도와 자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 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종교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유대교와는 상관 없으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를 보신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 - 하나님 사랑, 자선 행위 - 이웃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도 같다. 예수는 기독교냐 아니냐, 세례를 받았느냐, 이런 종교적인 형식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의 그 행위를 기억하고 계신다. 두렵고 놀랍다. 아니 두렵다. 기억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분명 우리들의 행위를 기억하신다는 것이다.

 

고넬료의 즉각적인 순종 - 이튿날 사람들을 보냈다. 고민과 주저함없이...

 

그는 예수를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오늘 본문만 놓고 보면 경건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런 경건한 사람을 기뻐하신다. 이런 사람들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부르신다.

기도와 자선 행위는 지금도 여전히 주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중요하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신약에 와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세례나 침례를 받고 교회에 등록하고, 직분을 받고, 주일마다 예배나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고, 십일조 헌금하고 뭐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궁극적으로 믿음 그리고 믿는 사람이란 한마디로 하면 기도와 자선 행위일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요

자선 행위는 내 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내 이웃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주님을 가두지 말라

구원은 기독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열심을 내고 많은 종교적 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 열심을 내고 기도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에 대한 순종을 보시고 기억하시며 구원에 이르도록 부르신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여기서 행위란 믿음의 행위 즉 간단하게 보면 기도와 자선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종교적, 율법적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말씀의 순종을 가리킨다.

속되고 부정한 것을 구별하고 정의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구원에 이르도록 부르심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사람을 기쁘게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다 기억하신다. 놀랍고도 두려운 그러나 한편으로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고 기쁜 하나님이시다.

나의 모든 믿음의 행위, 삶의 행위를 기억하시고 잊지 않으신다. 그 기억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부르신다.

 

나의 바위요, 나의 구원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흡족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