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행 24:24-25:12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다) 본문

疎通 2 (with YHWH)/Quiet Time

행 24:24-25:12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다)

에제르 2018. 3. 4. 00:30

 

* 며칠 뒤에

 벨릭스

 유대 여자인 자기 아내 드루실라

 바울을 불러내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관하여 바울이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바울이 정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관해서 말할 때에

 벨릭스는 두려워서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가시오 기회가 있으면, 다시 부르겠소" 

 동시에 그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하고 은근히 바랐다

 그래서 그는 바울을 자주 불러내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 두 해가 지난 뒤에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직책을 맡게 되었다 

 벨릭스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여, 바울을 가두어 둔 채로 내버려 두었다 

 

*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사흘 뒤에

 가이샤라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 사람의 지도자들이

 그에게 바울을 고발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줄곧 졸랐다

 그들은 그에게 제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올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은 길에 사람을 매복시켰다가, 바울을 죽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샤라에 무사하게 감금되어 있다는 말과

 자기고 곧 그리로 가겠다는 말을 한 다음에

 "그러니 만일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거든

 여러분 가운데서 유력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내려가

 서, 그를 고발하시오"하고 말하였다

 

*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여드레인가 열흘인가를 지낸 뒤에

 가이샤라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석에 앉아서

 바울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다

 그가 나타나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여러 가지 무거운 죄목을 걸어서

 고발하였으나, 증거를 대지 못하였다 

 바울은 "나는 유대 사람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

 에 대하여 아무 죄도 지은 일이 없습니다"하고 말하

 여 자신을 변호하였다

 

 그러나 베스도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하여

 바울에게 묻기를 "그대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재판을 받고 싶지

 않소?"하였다

 바울이 대답하였다

 "나는 유대 사람에게 조금도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나는 황제에게 상소합니다"

 그 때에 베스도가 배심원들과 협의하고

 "그대가 황제에게 상소하였으니, 황제에게로 갈 것

 이오" 하고 말하였다 

 

 

바울의 무죄에 대해 반복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서술은 유대 사람들뿐 아니라 로마 사람들이나 또 다른 이방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법으로나 유대 율법으로나 아무 죄가 없었다.

천부장 루시아는 바울이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23:29)

고소하는 자들은 아무 증거도 제시할 수 없다 (24:13)

그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다 (24:18)

그들은 바울의 잘못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24:20)

그들은 아무 증거를 대지 못하였다 (25:7)

바울은 유대 사람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에 대하여 아무 죄도 지은 일이 없다 (25:8)

총독 베스도도 바울이 유대 사람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알고 있다 (25:10)

 

우리가 세상에 선포하여야 할 것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관하여

정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관하여

 

벨릭스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유대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자 하였고, 바울에게서 구원을 얻는 믿음 대신 돈을 받을까 기대하였다.

나는 교회 안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 목사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입으로만 전할 뿐 전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의와 절제 그리고 장차 올 심판을 전하면서도 자신을 그것과는 상관없는 듯이 행동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하며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을까 하여 은근히 바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베스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도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였다.

목사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애를 쓰고 그 대가로 돈을 바라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사람의 비위나 마음을 맞추려 애를 쓰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교회 안의 많은 목회자, 장로, 직분자, 지도자, 리더 등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든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양들을 이렇게 어지럽히고 있다.

 

교회가 교회 안밖으로 선포하고 있는 말씀이 은혜와 구원, 자비에 너무 치우쳐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이기에 복음은 언제나  장차 올 심판과 연결될 것이고, 그 심판때문에 우리는 정의와 절제에 대해 곧 믿음의 삶에 대해, 믿음의 행위에

대해 세상과 교회에 많은 말을 하여야 할 것이다.

소망의 인내,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가 함께 하여야 한다.

 

성, 돈, 명예, 권력 등을 욕망하는 마음과 복음은 공존할 수 없다.

벨릭스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관하여 바울의 설명을 들었고, 정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관해서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지만, 그 탐욕을 버릴 수 없었다.

정의와 절제와 심판을 외면하고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려 갈망하였다.

마치 교회 안에서 '두마음'을 품은 자들과 같다고나 하겠다.

 

'욕망의 요구'와 '복음의 요구'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롬 12:1-2)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시기 위해 바울을 로마로 향하게 조금씩 인도하여 가신다.

우리의 기도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