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본문

疏通 1 (with Me)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에제르 2009. 12. 7. 19:37

* 성령의 역사를 분별할 수 없는 부정적 혹은 중립적인 기준 9가지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의 1부에서 성령의 역사 분별 기준으로서의 부정적인 9가지 증거들 혹은 중립적인 9가지 분별기준을 말한다. 이것은 당시 부흥반대주의자들이 부흥을 반대하는 근거로 사용한 중요한 기준들이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부흥반대주의자들이 부흥을 반대하는 데 사용한 이러한 기준들은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바른 기준점들이 될 수 없음을 밝힌다. 오히려 이러한 기준들은 중립적이다. 성령의 역사일 수도 있고, 성령의 역사가 아닐 수도 있다. 즉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도 이러한 일들은 일어날 수 있고,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도 이러한 일들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만을 가지고 ‘이것이 성령의 역사다. 또는 이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를 구분할 수는 없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중립적인 분별기준 9가지를 먼저 소개한다.

첫째, 아주 비범하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만 가지고는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흥시 일어나는 비범하고 특별한 일을 가지고 ‘이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옛날에 없었던 일이라고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새로운 일들을 행하실 수 있다. 성경의 계시역사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초림과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 등은 모두 이전에 비해 비범하고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둘째, 몸에 특별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눈물을 펑펑 쏟고, 큰 소리를 지르며, 실신하는 것 등이다.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흥시 발생하는 이런 몸의 특이한 현상을 가지고서 이것이 참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몸의 특별한 현상만 가지고는 성령의 역사를 분별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몸이 마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마음이 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법이다. 우리는 정신적인 충격이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람은 너무나 비극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실실할 수 있다. 또한 너무나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실신할 수도 있다. 따라서 큰 영적인 체험을 하면 몸에도 영향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예를 들어 지옥을 체험했을 때, 몸에 어떤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체험했을 때 몸에 어떤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몸에 어떤 특별한 현상이 생겼다고 해서 이것만을 가지고‘ 이것이 성령의 역사다. 혹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라고 분별할 수는 없다.

셋째, 기독교에 대한 이슈가 사회에 공론화되는 것이다.
부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흥시 일어난 현상으로 사회가 온통 소란스럽게 된다는 것을 들어서 부흥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판단을 잘못된 것이다. 부흥으로 인해 교회는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초대교회 때도 그랬다. 교회가 변화될 때, 교회의 변화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오히려 정상적인 것 아닌가? 부흥이 일어나면 사회에도 이슈가 된다.

넷째, 상상력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이다.
즉 환상을 보거나 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어떤 강력한 영향을 받을 때, 상상력이 크게 자극된다. 따라서 상상력이 크게 자극받아 심상에 어떤 강력한 인상이 새겨지고 때로는 환상을 보는 것만 가지고 이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일들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고,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는 성령의 역사인지에 대한 분별 기준을 삼을 수 없다.

다섯째, 모범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다. 
부흥을 반대하는 어떤 사람들은 부흥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하기 때문에 동일한 일이 일어나는 것임으로 이것은 참된 성령의 역사일리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이를 부인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영향을 받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는 것만 가지고서 이것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되지 못한다. 성경에 의하면 다른 사람의 선한 행동을 본받으라는 것을 적극 권면하고 있고, 또한 다른 사람의 모범에 영향을 받는 것은 인간 행동의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때로 지혜롭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뒤섞여 있다. 또한 구원받은 한 개인 안에도 여전히 죄의 세력은 잔존하고 있다. 따라서 부흥시에 어떤 사람이 때로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하고, 때로 실수를 한다고 해서 부흥의 모든 현상들을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도매금으로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심지어 베드로 사도까지 실수한 적이 있지 않았는가? 또한 고린도 교회 안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 않았는가?

일곱째, 사람들이 많은 실수를 범하는 것이 분별기준이 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의 실수하는 것을 보니 잘못된 것 아닌가? 아니다. 은혜 받은 사람도 잘못할 수 있다. 그것만 가지고 전부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심령 속에 은혜와 죄가 공존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여덟째,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아니다. 가룟유댜를 보라. 초대교회의 니골라를 보라. 때로 부흥운동의 지도자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가거나 이단으로 변질되는 사태가 있다고 해서, 전체 부흥운동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

아홉째,  많은 목회자들이 율법설교, 지옥설교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아니다. 지옥이 실재한다면 어떻게 무덤덤하게 지옥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지옥이 있다면 겁을 주어서라도 지옥을 피하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불타는 집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줄 때, 어떻게 말해줄 것인가? 이것은 물론 율법만 설교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율법에 대해, 죄와 지옥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 성령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 긍정적인 증거들 혹은 5가지 바른 분별기준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 바른 기준은 무엇인가?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2장에서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바른 기준 5가지를 소개한다.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기준은 무엇보다 먼저 성경이 제시하는 기준이어야 한다. 에드워즈는 요한일서 4장에서 발견한 성령을 분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 5가지를 제시한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에 반드시 동반되는 일이다. 사탄은 부정적인 혹은 중립적인 9가지 증거들은 일으킬 수 있지만, 긍정적인 5가지 증거들은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러한 5가지 긍정적인 증거들은 오직 성령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어떤 현상이나 어떤 체험 혹은 어떤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입증할 수 있는 5가지 분별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령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높인다.
성령은 예수님을 알려주러 오신 분이시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께 순종하게 만들어준다. 따라서 성령 충만은 곧 예수님 충만이다. 예수님 충만하지 않은 성령 충만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성령운동이 일어날 때, 어떤 외적인 현상이나 체험에만 몰두하고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사역이 강조되지 않을 때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둘째, 성령은 성경을 높여준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사랑하게 해 준다.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든다. 만일 성경을 무시하고, 성경을 부인하는 영이 있다면 그는 분명 성령과는 다른 영이다. 성경이외의 다른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려고 만드는 각종 운동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신비주의가 바로 이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은 반드시 성경 충만임을 명심하자. 성령과 성경은 언제나 함께 간다.

셋째,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진리 즉 교리와 신학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성령은 성경 속에 나오는 진리를 통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간다. 만일 어떠한 운동이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무시하게 만든다면, 또한 기본적으로 교리와 신학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시킨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보기 힘들다. 교회사에서 성령의 역사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던 종교개혁시기와 부흥시기에는 성경의 주요 진리, 기독교의 중요 진리에 대한 강렬한 관심과 신앙고백도 함께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따라서 성령 충만은 곧 진리 충만이요, 교리 충만이요, 신학 충만이라 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넷째,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로 이끈다.  
성령은  거룩을 추구하도록 한다. 성령은 우리가 깨달은 진리, 성경, 예수님을 통하여 결국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도록 한다. 하나님을 닮도록 한다. 성령은 성결의 영이기도 하다. 만일 어떤 운동이나 현상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를 불러일으키고, 더욱 성결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분명 성령의 역사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 충만은 곧 회개충만, 거룩 충만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게 만든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있다. 성경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는 사랑의 열매로 나타나야한다. 거룩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사랑의 역사로 이어진다. 성령 충만은 곧 사랑 충만이다.



=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 조나단 에드워즈 / 부흥과 개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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