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요나서 4:1-11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본문

疎通 2 (with YHWH)/Quiet Time

요나서 4:1-11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에제르 2011. 10. 26. 01:03

* 대화
 요나  주님 
 이 일이 매우 못마땅하여 화가 났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4:1,3)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4:4)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4:8)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4:9)
 옳다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4:9)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수고하지도 않았고,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
 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토록 아까워
 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 요나가 서둘러 스페인으로 달아났던 이유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 

* 하나님의 성품
   -. 은혜로우심
   -. 자비로우심
   -. 좀처럼 노하지 않으심
   -. 사랑이 한없는 분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성품에 기인함
은혜, 자비, 오래 참으심, 사랑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임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구원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에 의해 구원 받았음
구원이 자기 의를 통해, 스스로의 율법의 행위를 통해 받는 것이라면 요나와 같은 분노를 느낄 것이다
구원은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이다
그러므로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누가 더 나은지, 더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자랑할 것이 없다.
믿음이라는 커트 라인만 통과하면 누구나 그 행위, 공로, 헌신, 봉사, 열심 등과는 상관이 없이 구원에 이른다

구원의 방식과 방법과 대상은 주님의 권한이지, 우리의 권한이 아니다.
구원 받을 만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 기준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님으로, 요나와 같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에 따라 분노를 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회복을 원하신다.
구원은 모든 피조물에 해당하는 것이다. 짐승들 뿐만 아니라 온 우주만물의 회복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타락한 피조물 세계를 이제 다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복음은 온 열방과 모든 민족에게 조건없이 차별없이 전해져야 한다
구원의 대상은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나도 주님의 은혜, 자비, 오래 참으심, 사랑으로 구원받았다.
누군가를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우리가 차별할 때, 나 또한 그들로부터 차별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차별을 받을 것이다.
주님이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피조물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구원받아서는 안 될 대상은 하나도 없다. 구원해서는 안 될 대상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은혜, 자비, 인내, 사랑은 온 우주만물을 덮는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온 율법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