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나무도 구원받는다 본문
논현동 소재 영동교회 옥상에는 150 여 수종의 크고 작은 화분 400여개로 꾸며진 50평 남짓 정원이 있다.
요즘 같은 가을에는 탐스럽게 감이 열리고, 철철이 나무들이 꽃을 피워 벌들을 불러 들이는 전형적 녹지 공간이다.
지금은 영동 교회를 찾는 방문객들과 일부 교인들이 즐겨 찾는 쉼터가 되었지만 2 년 전만 해도 버려지다시피 한 장소였다고 한다. 처음에 분반 공부를 위해 설치했던 천막이 바람에 날아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오랜 동안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교회 관리인 이 길우 집사가 담임 목사의 운동 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청소를 시작하면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전기를 끌어들이고, 냉 온수기를 설치하고 보니 정원이 있는 휴게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지더라고 한다.
우선은 집에 있던 화분들을 가져다 놓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인근 벤처 빌딩들에서 버려지는 화분들로 수집 대상을 넓혔다.
개업 축하 용 화분들은 대부분 얼마 못가 시들기도 하고, 회사가 이전할 때 일반 폐기물과 함께 버려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은 버젓이 옥상 정원수의 일원으로 자리 잡은 나무 대부분 주인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가 입양된 것이다.
그런데 다 죽어가던 나무들이 영동 교회 옥상에 들어온 이후에는 신기하게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금 무성한 가지를 자랑하고 있는 두 그루의 자마이카는 인근 술집에서 싸움판이 벌어지는 바람에 두 동강 났던 것이다.
그리고 잎이 다 떨어져 죽은 것처럼 보였던 동백과 인삼 팬더는 일 년 동안이나 휴면 상태로 있던 끝에 드디어 잎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금 싱싱한 잎들로 둘러싸인 행운목은 외견상 완전히 말라 죽었던 것이다.
매년 새 가지를 힘차게 뻗어 올리는 소철은 새 문안 교회당 개축 공사장에서 캐내온 것이다. 그걸 가져다 준 사람에 의하면
뿌리만 남아 있던 그것이 콘크리트 바닥 아래 흙에서 적어도 10년 이상 묻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이곳에 오기 전 다 죽었던 삼나무도 잠을 깨어 잎을 내고 대사활동을 시작했다.
소문이 나자 인근 빌딩 관리인들이 자발적으로 폐 화분들을 갖다 주기 시작했다. 밀폐된 사무 공간 안에서 바람을 맘껏 쐴 수
없어 시들어가거나 휴면 상태에 있던 식물들은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되살아났다.
인근 빌딩 관리인들과 좋은 사이로 지내다보니 원각회라는 절의 관리인은 자주 달개비를 갖다 주기도 했다.
교인들도 더 이상 집에서 키울 수 없는 화분들을 갖다 놓기 시작했다.
어떤 교인 집에서 온 소철은 수령이 적어도 100년은 되어 보인다고 한다.
이 집사는 식물들에게 빛과 바람과 물을 충분히 공급하면 대부분 살아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옥상 정원에 있는 식물들은
하나 같이 때깔이 좋다.
벌들이 제일 많이 모여든다는 여름 귤나무에는 어른 두 주먹 정도 크기의 열매가 8개씩이나 주렁주렁 달려있다.
밤 10시에서 새벽 4시까지 핀다는 야래향은 온 정원을 밤새 향기로 뒤덮어놓는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 집사가 식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부인 문혜숙 집사와 같이 식물을 좋아하긴
했으나 요즘처럼 잘 알지 못했었다. 그래서 처음엔 음지 식물에 햇볕을 너무 쬐게 하거나 물을 많이 먹는 식물에 충분히 물을
주지 않아 시들게도 했다. 심지어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식물도 많았다.
그래서 화원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묻기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통해 정보를 얻기도 했다.
예를 들면 청매와 수양매가 인공수정을 해줘야 꽃이 필 수 있다는 건 전문가들에게 배웠고, 노란 코스모스는 싸이트를 통해
이름을 알았다. 지금은 풍성하게 잎새를 내민 금란은 오랜 동안 분갈이를 해주지 않아 한 줌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문 집사는 아예 분재를 배우러 다녔다. 지금 크고 작은 분재들은 문 집사의 손으로 탄생한 것들이다. 이들 부부의 손을
거치면 버려진 세면기와 다기도 훌륭한 화분이 된다. 이를 테면 수생 식물이 자라고 있는 수조는 커다란 세면기 밑을 막아서
만든 것이다. 거기에는 칠포, 갈대, 물 토란, 부레 옥잠, 부들, 물 배추, 수련 등이 사이좋게 살고 있다.
수생 식물이 들어오면서 먹이 사슬도 생겨났다. 수생 식물에 묻어온 개구리 알에서는 올챙이가 나와 예쁜 청개구리 식구까지
생겼다. 수생 식물이 살다보니 벌레를 잡아먹으려고 거미가 많이 생겼고, 새들도 자주 날아든다.
요즘 두 부부는 틈만 나면 옥상에 올라와 정원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탐나는 식물들은 사재를 털어 사오기도 하고, 그냥 얻을
수 있다면 멀리까지 여행도 마다 않는다. 그렇게 모여든 식물들이 모두 한 지붕 위에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팔려 나가기 위해 관리되는 화원의 식물이 아닌, 행사용 장식품이 된 사무실 비품이 아니라 제대로 살도록 보살펴지는 식물들!
아직도 익숙지 않은 솜씨로 돌보아주는 주인의 손길이지만 영동 교회 옥상 정원의 식물들은 모두 행복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동 교회 교인 열 명 가운데 아직도 아홉 명 정도는 옥상의 구원 받은 나무들 이야기를 모른다고 한다.
( 이 글은 김인철 목사님께서 제 블로그의 포스팅을 위해 기고해 주신 글입니다. 저를 위해서 제 블로그에 글을 한 번 남겨 주시고 싶어 하셨는데 어렵게 시간을 내셔서, 추석의 연휴 시간에 글을 써서 보내 주셨습니다.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疏通 1 (with 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구먼~~ (0) | 2009.10.20 |
---|---|
민속촌 (0) | 2009.10.19 |
[도서요약] 교회에 첫 발을 디딘 내 친구에게 (0) | 2009.10.06 |
콩 (0) | 2009.10.05 |
가을의 문경새재 (0) | 2009.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