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마태복음 9:1-13 (자비를 베풀며 살자) 본문

疎通 2 (with YHWH)/Quiet Time

마태복음 9:1-13 (자비를 베풀며 살자)

에제르 2010. 1. 19. 01:52
마 9:1-13 (새번역)

 율법학자  이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 
 바리새파 사람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대조
   -. 건강한 사람 ↔ 병든 사람,   의인 ↔ 죄인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
주님이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오는 자들을 부르신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

주님은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맞아 주시고 부르신다. 회복시켜 주신다. 치유하여 주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자비는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이다.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때로 자신의 것을 손해볼 수도 있다. 남을 생각하는 것이다.
희생제물은 자신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드리는 것이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은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마음의 중심응 보신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열심이 아니라, 남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손해보는 것이다.
종교적인, 형식적인, 제의적인, 율법적인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사랑함 같이 남을 사랑하는 것이 성경의 본 뜻이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7:12)


예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나와 함께 계신다.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나를 부르심은 종교생활을 위하여 부르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며, 자비를 베풀며 살라고 부르신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드려 죄인들과 함께 하셨듯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하셨듯이...

주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자비"일 것이다.
다른데서 주님의뜻을 구하며 찾을 것이 아니라,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루기 위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님의 뜻을 찾을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뜻은 아주 선명하다. 더 이상 때마다 구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내가 먼저 행동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서로 사랑하는 것...자신을 드려서 남을 섬기는 것...
주님이 나를 위해 자비를 베푸신 것 처럼, 나도 다른 이들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것...

문자적인, 탁상공론적인, 형식적인, 지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이제는 말씀대로 행동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내가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살아 가야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