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본문

疎通 2 (with YHWH)/Grasping His Story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에제르 2009. 6. 19. 12:29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마 22:20-21)


위의 구절은 그리스도를 로마에 대한 반역자 혹은 로마의 앞잡이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질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동전에 새겨진 로마 황제의 형상과 글을 가지고 함정을 벗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은 너무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도는 식민지 유대인들의 로마에 대한 납세 의무를 분명히 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의무를 강조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이사의 것(로마 동전)’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것’이 무엇을 가리켰느냐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것’은 성전 안에서 통용되던 유대 동전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왔다.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로마 동전을 우상으로 간주하여 헌금으로 사용하지 못했으며, 성전 뜰에서 환전상을 통해 유대 동전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마 21:12). 따라서 ‘하나님의 것’이 ‘바쳐지다’는 단어와 연결되어 ‘유대 동전’으로 해석되는데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첫째로 유대 주화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고, 둘째로 유대 주화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Randall Buth 는 이 구절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는 위의 구절이 ‘그런즉 가이사가 만든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이 만든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의역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것’ 즉,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자신이 처한 곤경을 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해야 할 이유를 설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이사에게 돌려지는 것은 돈에 불과하며 하나님에게 돌려지는 것은 돈 보다 더 귀한 삶 그 자체이다. 적어도 Buth는 본문에 있는 ‘하나님의 것(사람)’과 ‘가이사의 것(돈)’의 대조와 ‘가이사에게 바치다(납세)’와 ‘하나님께 바치다(헌신)’의 대조, ‘가이사의 형상’과 ‘하나님의 형상’의 비교를 통해 문맥적인 해석을 가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의 글에 나오는 랍비 힐렐의 이야기를 곁들여 음미해본다.

  어느 날 일과를 마치고 힐렐이 제자들과 나눈 대화이다. “선생님 어디로 가십니까?” “미쯔바(율법)를 지키러 간다네” “어떤 율법을 지키러 가십니까?” “목욕하러 목욕탕에 간다네” “그게 율법입니까?” “그렇다네, 극장이나 경기장에 세워진 왕들의 형상을 닦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보았는가?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들은 얼마나 더 자신들을 닦고 씻어야 하겠는가?”(레위기 랍바 34:3)


어떤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왕은 자신의 형상을 돈에 새겨 넣어 수 천 개 찍어내지만 꼭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사람에게 새겨 넣어 수 없이 많고 다른 사람들을 만드시니 얼마나 놀라운가?” 어떤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말을 인용해서 대답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 이 글은 예슈아 성서연구원(www.yeshuabible.com) 대표 김인철 목사님의 칼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