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무소유의 행복 본문
".........나무아미타불이란 '오, 주여!'가 아니라 '돌아가 귀의 한다'는 뜻........그 세계에 가고 싶은 희망자는 나무아미타불을 지극하게 부르면 죽은 후에 그곳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토가 반드시 서쪽의 그 많은 국토를 지나서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마음이 곧 부처다. 마음이 청정하면 바로 그 자리가 정토다'라는 교설로 보면 불교의 초점은 분명 내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 있는 것..........함께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지금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건 아랑곳없이 초연하려 하는 종교인이 있다면 그가 속한 종교는 현장 밖에서 말라 죽을 것이다. 지혜와 자비가 모든 이웃을 위해 청정하게 베풀어지지 않고 나만의 이해 관계 때문에 기울어진다면 그것은 무한한 광명도 영원한 생명도 될 수 없다. 시대의 불교도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만 외우고 몸소 행하지 않을 때 골목 안 꼬마들뿐만 아니고 일반 대중들로부터 날아오는 돌팔매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은 세상의 뜬이름이다.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지혜에 눈 뜨고 중생을 건지기 위함이다."
"현대인은 소음에 휩쓸려 정작 들어야 할 진리를 듣지 못하는 공해의 피해자"
"종교는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사회부조리를 지적하는 사회참여 의식이 요청된다."
"과거를 따르지 말라. 미래를 바라지 말라. 한번 지나가버린 것은 이미 버려진 것, 그리고 미래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당면한 현재의 일들을 자신의 처지에서 잘 살펴 흔들림 없이 바르게 판단하라. 그리고 그 경지를 더욱 넓히라. 다만, 오늘 해야 할 일에 전력을 기울이라. 누가 내일에 죽음이 있을지 알 수 있는가 ...... ”<대장경 ‘일야현자경’>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참뜻은 나와 이웃이 모두 부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절에 있는 부처님은 불상이며 석가모니는 과거완료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웃이 바로 살아 있는 부처예요. 이것을 아는 것이 불탄일에 연등 1백만개를 켜는 것보다 나아요"
"나와 이웃이 바로 부처이며 예수님이며 천주님입니다......불교를 배우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배우는 것이며 자신을 배우는 것은 자신을 텅 비우는 일이에요. "
"절망에 빠질 때마다 나는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에셔나 진리와 사랑이 항상 승리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우리는 마약 중독자처럼 습관적으로 신문을 펼쳐보고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보도된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득보다는 해가 훨씬 많다. 양식과 형평을 잃고 한쪽으로만 몰아가는 언론의 횡포가 우리들의 맑은 의식을 얼마나 얼룩지게 만들고 있는지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뒷날 산을 내려와 배달된 신문을 펼쳐보고, 솔직히 말한다면 이건 시끄러운 소음이요 쓰레기 더미구나 싶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면 우선 낡은 옷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낡은 옷을 벗어버리지 않고는 새 옷을 입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길과 소통을 가지려면 그 어떤 길에도 매여 있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종교의 본질, 근본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따뜻한 가슴이에요. 영성이니 참선이니 하는 것은 모두 한가한 소리에요. 저 자신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계는 어떻게 살겠다는 다짐이요 맹세다. 그것은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 삶의 질서요 청정한 생활규범이다. 계를 받는 것은 죽은 뒤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그 청정한 규범으로 개선하는 데 근원적인 의미가 있어야 한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이끌 것인지 연구하고 반성하기보다는 불사에 몇 사람이 동참했느냐만 관심을 둔 결과이다."
"어떤 종교의 성전에는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신이 자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형상대로(혹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신을 창조한 것이 아닐까 하느느 생각이 든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한 것이 진실이고 사실이라면, 그의 피조물인 인간 또한 신처럼 완전한 존재여야 한다. 그러나 너나없이 인간들이 하는 직거리를 보면 도리어 자신들의 창조주의 신을 농락하고 욕되게 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오늘날의 절과 상당한 교회는 순수한 신앙보다는 세속적인 상업주의에 너무도 많이 오염되어 있다. 돈 없이는 절이나 교회에 나갈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마치 신심을 돈으로 재려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의 가르침을 듣는다. 종교가 무엇이고 깨달음이 어떤 것이며 선의 세계가 어떻다고 외치는 소리가 정기적인 집회마다 시끄럽고 넘친다. ......그러나 곰곰이 귀를 기울여보면 얼마나 메마르고 공허하고 관념적인 소리인지 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스스로 깨달았노라고 자기 선전을 하는 사람치고 그에게서 깨달음의 행을 본 적이 있는가?"
"수행자들이여, 정치권력 앞에 의젓하고 당당하게 처신하라. 그런 수행자라면 종교적인 기늘 또한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수행자를 세상에서는 귀하게 여긴다."
"이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면 우리 안에 있는 인간의 대지도 또한 죽어 간다. 왜냐하면 인간은 독립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지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가난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분수 밖의 것에 탐욕을 부리지 않고 '자기 그릇'에 만족하여 꿋꿋하게 살던 그 맑은 가난의 정신이 살벌하고 비정한 이 시대에 사람의 자리를 지켜 줄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진짜 종교적인 삶은 어떤 스승의 가르침이나 교리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어떤 조직에도 예속되지 않고 한사람의 개인으로서 그 자신의 삶을 살며 순간마다 진리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인간은 신이나 어떤 대상을 습관적으로 숭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신인지 거듭 물으면서 스스로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그는 온갖 두려움으로부터, 자기중심주의로부터, 이기심과 야심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인지,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 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일이야말로 사람의 도리이고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다. 우리들에게 구원이 있다면 추상적인 신이나 부처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 안에서 이루어진다"
"종교가 일단 조직된 힘을 가지면 배타성과 집단이기주의가 생겨 종교의 본질과 거리가 멀어지기 쉽습니다. 각 종교는 늘 이점을 스스로 경계하고, 신앙인들은 내가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이웃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종교인의 바른 현실참여입니다. 종교인의 뜨거운 신앙은 내면으로 심화되야지 겉으로 요란하게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내면으로 심화되지 못한 종교열은 폭력이 될 수도 있고,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자기 종교의 잣대로 재려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종교 없이도 사랑을 실천하며 바르게 살 수 잇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바라는 바입니다."
" 「여시어경(如是語經)」에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펼쳐 보였다. '어떤 사람이 내 가시자락을 붙들고 내 발자취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할지라도 만약 그가 욕망을 품고,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그릇된 소견에 빠져 있다면 그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나 또한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법을 보지 못하고 법을 보지 못한 자는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행복 / 장혜민 / 산호와 진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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