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성경 묵상 본문

疎通 2 (with YHWH)/Quiet Time

성경 묵상

에제르 2011. 7. 14. 16:40

성경에 관하여 많이 아는 것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아무리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해도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성경에 대한 연구와 성경묵상은 출발이 다르다. 연구는 신앙적 배경 없이 누구나 가능하지만 묵상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없이 는 불가능하다. 성경연구는 어느 정도 학문적 체
계를 필요로 하지만 묵상은 누구나 가능하다. 연구가 논리와 체계를 세워준다면 묵상은 우리 앞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한다. 설교 강단에 서기 전에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원하는가? 본문과 나만의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 보라. 그곳에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숨결이 있고 나를 향해 흘리신 주님의 보혈의 피가 있다.

1) 성경묵상의 자세

성경묵상을 위한 첫 번째 자세는 본문과 나만의 만남을 가지는 일이다. 설교자는 본문을 택하고 나면 먼저 여러 가지 주석서나 설교집을 읽으려 한다. 다른 것을 먼저 읽게 되면 나의 생각을 지배 당하기 쉽다. 본문이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들을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말씀과 나만의 씨름을 통해 세미하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숨결을 경험할 수도 없다. 설교자들이 다른 주석서나 설교집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충분한 묵상 없는 보조도구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때로 방해할 뿐이다.
둘째, 성경은 사랑하는 연인의 편지를 읽는 마음으로 묵상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는 받는 즉시 떨리는 마음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감격이 넘쳐야 한다. 가끔 이런 기도를 듣곤 한다. “하나님, 이 말씀 잘 쪼갤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우리가 쪼개야 하는 것은 말씀이 아니라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이 쪼개어져야 한다. 말씀은 우리가 듣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과 같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을 읽고 나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떨림이 있어야 한다. 태초가 몇 년 전인지, 하나님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연구하다가 정작 만나야 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성경을 덮으면 바람직한 묵상이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편지는 일차적으로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감탄의 대상이다.
셋째,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묵상해야 한다. 설교란 주어진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하는 말씀을 듣고 전하는 일이다. 설교자란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하는 왕의 전령사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은 것을 전하는 것은 설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일이며 설교자의 권위를 포기하는 일이다. 열왕기상 17장에는 엘리야의 승리에 찬 모습을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소개한다. 아합왕에게 비도 이슬도 없을 것이라 선포하고 사르밧 과부의 집에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과부의 아들이 죽고 엘리야가 기도함으로 다시 살아나는 말씀이 나온다.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엄청난 승리 후에 오는 엘리야에게 임한 위기다. 이를 두고 '승리 후에 오는 위기' 혹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도의 능력'이라는 주제로 설교해서는 안 된다. 이는 본문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가 아니라 설교자가 본문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경우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본문을 위기극복을 위한 교과서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넷째,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묵상해야 한다. 일반 신자든 설교자든 성경을 읽는 일차적인 목적은 분명하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적어도 두 가지의 변화가 일어난다. 심령에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과 신뢰가 일어나든지 내 삶에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든지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우리의 영혼을 쪼개는 말씀이라면 변화 없이 말씀을 읽을 수 없다. 마태복음 6:6절에는 주님이 가르치는 기도가 나온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말한다. 기도의 골방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어가서 문을 닫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누군가 나의 기도를 지켜볼 수 있는 모든 근거를 차단할 때가 은밀하게 보는 하나님이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누군가 한 사람 정도는 내가 기도하는 것을 지켜보기를 원하는 마음마저도 내려 놓으라는 말이다. 기도하러 문을 닫고 들어갈 때에라야 비로소 이 말씀을 바르게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다.

2) 성경묵상의 방법

첫째, 성경을 묵상할 때는 적어도 세 가지의 질문이 필요하다. 본문이 당시에 어떤 의미로 기록되었는가? 본문은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본문은 우리 공동체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가? 성경은 기록되었을 당시에 그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차적인 의미가 있다. 성경은 당시의 의미를 벗어난 새로운 의미를 어떤 경우라도 가질 수 없다. 당시의 의미에서 찾아낸 원리에 근거하여
오늘날 우리 공동체에게 적용될 원리를 찾아야 한다. 당시의 의미와 오늘날의 적용을 찾으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설교자 자신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자신을 십자가 뒤에 숨겨달라고 기도하지만 설교자가 숨을 곳은 전혀 없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자의 인격과 영성과 삶을 통해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인격을 통한 진리의 선포'라고 한 필립 브룩스의 말은 어느 시대이든 설교자의 삶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한다. 마태복음 18:15-16절에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한 공동체가 어느 정도의 사랑과 용서까지 나갈 수 있을지를 잘 보여준다. 한 형제가 죄를 범하면 무관심할 것이아니라 그에게 가서 권면하라는 말이다. 듣지 않으면 두세 증인을 데리고 가서 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라고 한다. 회개하면 기꺼이 그를 용서하라는 말이다. 온전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사랑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설교자는 자신과 공동체를 돌아볼 수 있다. 오늘날 죄를 범하면 포기하거나 무관심하는 시대에 교회가 사랑하는 지체를 세우기 위해 끝없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대할 것과 진정한 용서를 촉구한다.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이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설교란 당시에 주어진 말씀의 의미에 근거하여 오늘날도 적용될 수 있는 원리를 찾아내고 그 원리에 근거하여 오늘날 삶으로 적용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당시의 의미를 먼저 파악하는 것은 본문 묵상의 시작이고 오늘날 적용으로 다가오는 것은 본문 묵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둘째, 주어진 본문을 반복하여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이나 깨달음이 떠오르면 기록하면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다. 한 설교를 위해 적어도 10번 이상은 읽는 것이 좋다. 처음 두세 번은 집중적으로 읽고 다음부터는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면서 읽다 보면 본문이 말하는 중심 내용을 이해할 뿐 아니라 적용도 떠오른다. 반복해서 읽는 가운데 적절한 예화도 생각나고 서론과 결론을 어떻게 준비할지 떠오르기도 한다. 이렇게 10번 정도 읽으면 서너 시간이 쉽게 지나간다. 말씀과 나만의 깊은 시간을 누리는 것이 묵상의 본질이다.
효과적인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의 전인격으로 스며 들어와 설교자가 그 말씀에 온 몸을 적실 때 가능하다. 어느 정도까지 본문을 읽을 것인가? 헨리 조웻의 말은 기억할 만하다. “나는 설교의 주제를 맑고 투명하면서도 짧고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설교가 완벽하게 쓰여졌거나 청중에게 전할 준비가 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설교든지 그 문장이 구름 한 점 없는 달처럼 분명하고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청중에게 설교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설교원고를 작성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본문이 구름 없는 달처럼 명확한가? 그렇다면 청중을 염두에 두고 설교를 작성하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다시 본문을 펼치고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라.

셋째, 본문의 바람직한 이해를 위해 다양한 성경 번역을 사용할 수 있다. 성경은 번역을 필요로 하는데 완벽한 번역이란 있을 수 없다. 최상의 번역이 있을 뿐이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다양한 번역을 참고하는 것은 한 성경으로 찾을수 없는 내용을 깨닫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때가 있다. 바울은 빌레몬서 12절에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라고 오네시모를 부탁한다. ‘심복’이라는 말은 마치 ‘충실한 종’과 같은 느낌을 준다. NIV성경은 ‘심복’을 ‘심장’(heart)으로 번역해 놓았다.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심복이란 '심장'에 해당한다. 바울은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난 노예 오네시모를 나의 심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한 단어에 대한 바른 해석은 빌레몬서 전체를 읽는 느낌을 다르게 만들어 준다. 좋은 주석 성경과 영어 성경은 본문 묵상을 위해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다.

넷째, 본문을 대할 때마다 성령의 조명과 은혜를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마음으로 묵상해야 한다. 바람직한 성경묵상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본문의 의미를 깨닫고 삶으로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다는 말은 문자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 이상이다. 말씀으로 내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변화되고 삶에 거룩한 변화가 일어날 때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말씀을 대할 때뿐 아니라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가운데 절대적인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다. 성령께 의존하는 것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성경을 묵상하는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말씀을 대할 때마다 나의 눈을 열어 주님의 기이한 법을 보게 해 달라는 심정으로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다. 성경묵상과 설교에서 성령의 역할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것이다.


(류응렬 교수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설교학)




[ QT 저널 No.8  2011. 여름. 큐티저널 / 성서유니온선교회 / p 21-27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