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룻기 2:14-23 (주님의 때와 방법) 본문
룻기 2:14-23 (새번역)
단어 - 혹시(2:2), 우연히(2:3), 마침(2:4), 자비(2:20)
시간 - 그 때(2:4), 먹을 때(2:14), 저녁때까지(2:17), 곡식 거두기를 다 끝낼 때까지(2:21), 밀 거두기를 끝낼 때까지(2:23)
룻이 혹시 나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진 이삭을 주을까하여 밭을 찾아간다.
이방 여인이 유대 땅에서 자신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당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배겅으로 보았을 때 불가능 한 일이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이삭을 주우려고 하는 유대의 가난한 자들이 많았을 텐데 그들을 제치고 룻이 이삭을 주울 가능성은 희박한 일이다.
룻이 이삭을 주우려고 간 밭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이었다. 기막힌 우연이다. 그 넓은 땅 가운데 찾아간 곳이 바로 나오미의 친척 보아스의 밭이라는 것은 기가 막힌 우연아닌가?
그런데 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들렀다. 하필이면 그 때...룻이 보아스의 밭에 있을 때 일꾼들을 격려하기 위해 밭에 들렀다.
이건 우연을 가장한 필연아닌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세밀하게 짜여진 각본에 의한 연출아닐까?
그 보아스가 또 룻이 혹시 기대했던 자신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인 것이다. 자비를 두번이나 반복할 만큼 자비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주 골고루 갖춘 사람인 것이다.
보아스의 그 자비로 룻은 그 때부터 먹을 때뿐 아니라 저녁때까지 이삭을 주울 수 있었으며 보리 수확기간이 끝나고 밀의 수확기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이삭을 주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의 배경과 상황 가운데 주님의 직접적인 개입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주님께서 하셨다고 하는 그 흔한 문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예비하시고 준비하셔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만나게 하시고 이삭을 줍게 하시고 때를 따라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심을 보게 된다.
혹시, 우연히, 마침을 가장하여 은밀한 가운데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고, 주님의 뜻을 이루심을 보게 된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직접적인 결과과 나오지 않는다고 주님의 일하심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이럴 수 있느냐고 하늘에 삿대질하고 따질 것이 아니라 은밀히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역사하심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신뢰함이다.
주님은 지금도 주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해 은밀히 행하고 계신다.
혹시와 우연과 마침을 가장하셔서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때에 맞게, 때를 따라서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오늘도 혹시나 하고 했던 일가운데 우연히 그 일들이 진행이 되고, 때 마침 환경이 조성되어 일이 이루어 졌을 때, 은밀한 가운데 주님의 뜻을 이루시며,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기 원한다.
내가 한 일이 아니요 주님께서 하신다. 나는 그저 순종했을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룻이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저 한 것처럼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시며 행하신다. 주님의 때까지....
단어 - 혹시(2:2), 우연히(2:3), 마침(2:4), 자비(2:20)
시간 - 그 때(2:4), 먹을 때(2:14), 저녁때까지(2:17), 곡식 거두기를 다 끝낼 때까지(2:21), 밀 거두기를 끝낼 때까지(2:23)
룻이 혹시 나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진 이삭을 주을까하여 밭을 찾아간다.
이방 여인이 유대 땅에서 자신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당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배겅으로 보았을 때 불가능 한 일이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이삭을 주우려고 하는 유대의 가난한 자들이 많았을 텐데 그들을 제치고 룻이 이삭을 주울 가능성은 희박한 일이다.
룻이 이삭을 주우려고 간 밭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이었다. 기막힌 우연이다. 그 넓은 땅 가운데 찾아간 곳이 바로 나오미의 친척 보아스의 밭이라는 것은 기가 막힌 우연아닌가?
그런데 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들렀다. 하필이면 그 때...룻이 보아스의 밭에 있을 때 일꾼들을 격려하기 위해 밭에 들렀다.
이건 우연을 가장한 필연아닌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세밀하게 짜여진 각본에 의한 연출아닐까?
그 보아스가 또 룻이 혹시 기대했던 자신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인 것이다. 자비를 두번이나 반복할 만큼 자비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주 골고루 갖춘 사람인 것이다.
보아스의 그 자비로 룻은 그 때부터 먹을 때뿐 아니라 저녁때까지 이삭을 주울 수 있었으며 보리 수확기간이 끝나고 밀의 수확기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이삭을 주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의 배경과 상황 가운데 주님의 직접적인 개입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주님께서 하셨다고 하는 그 흔한 문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예비하시고 준비하셔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만나게 하시고 이삭을 줍게 하시고 때를 따라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심을 보게 된다.
혹시, 우연히, 마침을 가장하여 은밀한 가운데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고, 주님의 뜻을 이루심을 보게 된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직접적인 결과과 나오지 않는다고 주님의 일하심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이럴 수 있느냐고 하늘에 삿대질하고 따질 것이 아니라 은밀히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역사하심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신뢰함이다.
주님은 지금도 주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해 은밀히 행하고 계신다.
혹시와 우연과 마침을 가장하셔서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때에 맞게, 때를 따라서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오늘도 혹시나 하고 했던 일가운데 우연히 그 일들이 진행이 되고, 때 마침 환경이 조성되어 일이 이루어 졌을 때, 은밀한 가운데 주님의 뜻을 이루시며,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기 원한다.
내가 한 일이 아니요 주님께서 하신다. 나는 그저 순종했을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룻이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저 한 것처럼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시며 행하신다. 주님의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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