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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이너(Thomas R. Schreiner) 교수의 신약신학 요약 본문

疎通 2 (with YHWH)/Grasping His Story

쉬라이너(Thomas R. Schreiner) 교수의 신약신학 요약

에제르 2011. 12. 24. 13:29

신약성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ESV 학습 성경(English Standard Version Study Bible)에 수록된 미국 풀러 신학교 쉬라이너(Thomas R. Schreiner) 교수의 논문 '신약신학'을 요약해보면 다소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

    신약의 메시지는,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이길 것이라는 약속으로 시작함으로 써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는 구약의 메시지와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약속들은 특히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언약, 새언약 같이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들에서 전개된다. 요한과 예수님이 무대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의 구원약속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로마가 아직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다윗같은 왕이 땅을 통치하지 않았으며, 아브라함에게 하신 우주적인 축복(창12:3)은 거의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왔다. 유대인들은 왕국이 도래할 때 하나님의 대적들은 즉시 전멸되고 새창조가 동틀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국이 당신의 백성과 사역 가운데 임했지만 왕국의 대적들은 즉시 전멸되지 않았다고 가르치셨다. 그 왕국은 겨자씨나 누룩과 같아서 예수님과 그 사역 안에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전하게 임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죄의 전가와 대속의 죽음을 겪는 이사야 53장의 주의 종의 역할을 완성하셨지만, 심판 날은 여전히 미래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왕국의 점진적 성장과 최종 완성을 위해 “당신의 왕국이 임하소서” 라는 말들로 기도한다.  


    공관복음서들은 왕국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며, 요한은 영생과 같은 구절로 비슷한 진리를 표현한다. 영생은 새창조가 시작될 때 실현될 ‘오는 세상’의 생명인데, 요한복음은 그 아들을 믿는 사람들은 지금 ‘오는 세상’의 생명을 즐긴다고 주장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행한 일 때문에 심판받을 마지막 부활의 날을 바라본다. 요한에게 있어 초점은, 지금 하나님의 구원약속들은 이미 시작된 실현 도상에 있는 반면에 미래와 최종 실현은 기대 중에 있다. ‘이미, 아직 아니’ 주제가 전 신약을 지배하고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는 열쇠로 작용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는 세대가 도착했음과 지금이 구원의 날임을 가리키며, 성령의 선물 역시 하나님의 말세의 약속들 중의 하나임을 드러낸다. 마지막 날들(종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옴으로써 우리는 그 분을 통해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명백한 말씀을 받았다. 부활이 역사를 관통하고 성령이 부어졌기에 우리는 구원역사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높은 곳에서 통치하시지만 만물은 아직 그 분께 복종하지 않고 있다.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

    신약은 하나님의 구원약속이 성취되었다고 강조하지만 그러한 약속들과 언약들이 독특하게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실현되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 분은 새롭고 더 나은 모세이시며 새 여호수아이시고 하나님의 참 지혜이시며 마지막 선지자이시다.

   예수님의 기적들, 치유들, 귀신들을 능가하는 권위는 왕국 약속들이 그 분을 통해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신적 권위를 공유하시며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영원히 다윗의 보좌에 앉을 약속을 실현하시는 메시야이시며, 그 분을 메시야로 인식하는 것이 전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선교적 설교의 기초가 되고 서신서들과 계시록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신약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고귀하심이 두드러지며 예수님께 대한 사람의 반응은 그 자신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한다. 예수님은 고대로부터 왕국을 받아 영원히 다스리실 ‘인자’이시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그 분의 통치는 당신의 백성의 죄들을 속량할 주의 종으로서 받는 고난을 통해 성취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구약에서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던 모든 행위를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행하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칠십인역(헬라어 역 구약성경)은 여호와를 ‘주’로 인정하는데, 신약 저자들은 여호와와 관련된 구약본문들을 인용하거나 암시할 때 자주 ‘주’란 칭호를 예수님께 적용하고 구약적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 칭호는 예수님의 신성을 지지하는 또 다른 분명한 한 증거이다.


    비록 인간의 구원을 위해 겸손하게 신성의 특권을 얼마간 포기하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바로 그 형체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유일하고 영원한 교제를 즐기시고, 아버지처럼 경배를 받으시며, 그 분의 장엄한 고귀성은 성찬과 세례로서 기념되고, 성육신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으로 인정되신 영원한 신적인 말씀이시다. 결국 많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명백하게 하나님으로 불려진다. 

    신약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이다. 신약은 특히 그 분이 대속하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복음서들과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십자가의 의미는 새창조,입양, 죄사함, 칭의, 화해, 대속, 성화, 속죄와 같은 주제와 관련해서 설명되는데, 이런 주제들은, 구원이 주님으로부터 오며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구속하신다는 것을 가르친다. 


▶  성령의 약속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인 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으며 오순절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도록 주어졌으며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대주재와 구세주로서 찬양 받으셨다. 성령은 선교를 위해 주어지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한 표지가 되고,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주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신다.  


▶  인간의 반응

    죄와 죽음이 모든 인간을 지배하는 한 쌍의 능력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시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죄의 능력은 성경 이야기 진로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 율법은 그 자체의 능력으로 인간을 죄의 속박으로부터 건질 수 없다. 죄는 단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을 나타낸다. 죄의 본질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을 거부하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숭배이다.

    그러나 죄가 최종적인 단어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기에 거기에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두드러진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본적인 반응은 믿음과 회개인데, 그 부름은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언급과 사도행전의 설교와 바울서신과 신약 전반을 통해 나타난다. 예수님의 새 공동체(교회)의 회원과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거짓 신들과 자기 숭배와 악을 버리고 하나님과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 돌아서야 한다.


   실제로 신약 전체는 회개와 믿음에로의 부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신약 저자들은 그의 독자들을 끝까지 믿음에 거하도록 격려하며,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위험들을 경고한다. 진실한 신자들은, 구원은 주님의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오는 저주’, 곧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그들을 건지시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증언한다. 


▶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구원 약속들은 ‘새로운 사회’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성취되기 시작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되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며,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표지를 최상으로 보여줌으로 복음의 아름다움을 실현하도록 부름받는다. 

    그러나 교회는 잠정적으로 존재하는 종말론적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빛나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고, 구원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여 죄의 흑암 속에 사는 다른 이들이 사탄의 왕국에서 주님의 왕국으로 옮기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을 대면하고 영원히 예수님을 섬길 그 날을 고대한다. 그 날엔 새로운 피조물이 온전하게 나타나고 모든 것이 새로워지며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자비 때문에 영원히 찬양받을 것이다. 


[ 이 글은 부경성경연구원(http://www.bkbs.org/freeboard/) 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