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신약신학 연구는 주제별로? 또는 책별로? 본문
주제별 연구 대 책별 연구
신약신학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신약신학을 역사적으로 방법론적으로 더 깊이 연구하려면 내가 쓴 부록을 읽기 바란다. 나는 독자에게 신약 성경 저자의 신학을 독자적으로 분리하여 연구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마셜과 티엘먼이 쓴 [신약신학]은 신약 성경 저자 각자의 신학을 특징 있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만일 신약신학을 주제별로 소개한다면, 다른 저자의 신학이 어떤 특정 저자의 신학에 파묻힐 가능성이 있다. 베드로후서나 유다서는 바울 신학에 파묻혀서 겉 내용만 소개될 수 있다. 따라서 신약 성경에서 다른 정경이 기여하는 기여도가 경시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 서신과 같은 신학을 담고 있는 다른 짧은 서신의 신학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신약 성경을 각 책별로 연구한다면 신약신학 연구에 새로운 관점이 소개될 수 있다. 그리고 주제별로 신약신학을 연구하면 책마다 갖는 독특한 구조에 가려진 특징들을 놓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약신학 연구에 있어서 주제별 접근 방식을 택했다. 왜냐하면 주제별 접근 방식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약신학을 주제별로 접근하면 그 신학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더욱 잘 설명할 수 있다. 만일 신약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순서대로 공부한다면, 독자들은 인자,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메시아의 주제들을 따로따로 공부해야 한다. 이 말은 신약신학을 공부할 때 신약 성경 본문을 분리해서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신약신학을 한 가지 방법으로 공부해야 옳다고 생각하는 사고를 거부한다. 신약신학의 주제는 광범위하여 오직 한 가지 접근 방식인 주제별 방식으로 공부하면 사람을 지치게 할 수 있다. 제임스 바는 "성경 신학 연구에 적당한 연구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신약신학이 복잡한 신약 성경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다양한 접근 방법과 관점은 신약신학 연구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다양한 접근 방법 중 한 방법만 선택하는 것이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약신학은 종말론, 하나님 백성, 기독론 그리고 기독교 윤리 관점에서 다양하게 연구할 수 있다.
주제별 접근 방식에 대한 변호
그러나 주제별 접근 방식의 신약신학 연구가 성경 신학에 뿌리에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이 오늘날 필요하다고 믿는다. 거스리는 신약을 주제별로 연구했다. 그러나 거스리의 연구는 조직신학과 인접해 있다. 반면에 슐라터는 창조적이며 통찰력 있는 방법으로 신약신학의 주제의 관점을 견지하며 연구했다. 많은 신약 학자들은 이 접근 방법을 기피한다. 왜냐하면 주제적 접근 방법이 너무 조직신학적 접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갖고 성경 본문을 다루지 않을까 염려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 방식으로 신약신학 연구를 통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신약은 서로 모순되는 신학을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 연구 착수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이 책의 부록에서 왜 내가 주제별로 신약을 연구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왜 신약신학은 모순되지 않고 통일성을 갖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물론 주제별로 신약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성경을 책별로 그리고 저자별로 연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신약 성경이 모순된다면, 각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은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주제별 접근 연구 방법은 본문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거나 신약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위험을 피하게 한다. 서양 사회는 긴 이야기체 본문을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약신학 연구도 신약 일부만 다루어 신학을 만드는 경향이 있고, 또는 성경 한 구절을 인용하여 자기가 원하는 신학 사상을 발전시키는 경향도 있다. 성경 몇 구절을 인용하여 신학화하는 것보다 성경 전체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파악하고 신학을 말하는 것이 더 안전한 신학 방법이다. 본문을 귀납적으로 연구하지 않는다면, 신약신학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신약 성경의 짧은 부분을 우리의 세계관과 이해력만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경을 부분적으로 공부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학적 증거와 현상을 다루려고 한다면 혼란해질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본문을 자신의 관점과 이해력으로 판단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객관적 관점에서 신학을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귀납적과 연역적 연구 방법은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만일 신약신학을 성경 전체에서 연구하지 않는다면, 연구하는 특정한 본문은 신학의 전체적 통일성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제별로 연구한다면, 신약 성경을 구성하는 작은 서신들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위에서 신약 성경을 책별로 연구하는 유익을 다루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의 저자별로 성경을 연구할 의무도 있다. 우리는 신약 성경 정경 가운데 특정한 어느 책도 저자의 독특한 신학이라고 주장할 문헌은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서신서의 경우를 들면 서신서는 각 교회의 역사적 상황과 특수한 환경을 기록한 서신들이다. 예를 들면, 유다서와 야고보서를 읽고 유다의 신학, 야고보 신학을 말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짧은 편지에 저자의 신학을 전부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바울은 열세 개의 서신을 기록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야고보와 유다 서신과는 신학이 다르다. 우리는 바울의 사고를 집대성한 바울 서신이란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 바울 서신조차도 완전한 신학적 이해를 위한 완전한 신학적 지도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약간의 공백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유다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마태, 마가, 누가-행전, 요한 문헌에 대해서도 더욱 많이 말할 수 있다. 이들 문헌의 특정한 강조점에 대한 유용한 연구들이 발표되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서 저자들이 자신의 복음서를 구성할 때 받았던 제약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서 저자들은 역사가이자 신학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실제 말씀과 사역으로부터 신학을 구성하는 것에 있어 자유롭지 않았다. 요한복음을 공관복음과 비교해 보면, 다른 관점들이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 이해에 엄청난 풍성함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점들은 대부분의 초보 수준의 독자들에게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더구나 편집 비평은 공관복음서조차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여전히 나는 복음서들이 역사에 기초하고 있음을 믿는다. 관점의 다양함이 역사에 대한 관심 부족이나 자기 마음대로 기록할 자유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복음서가 네 권으로 있는 것은 한 권의 복음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깊이와 넓이를 다 담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서가 더 넓은 청중을 대상으로 했다는 최근의 강조점은 복음서가 특수한 공동체에 제한적으로 보내졌다는 견해를 잘 교정해 주고 있다.
신약신학을 연구할 때는 반드시 복음서가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과 성령 강림 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복음서에서 보이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신학이 완전한 형태를 갖춘 신학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 사건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들과 역사를 신실하게 기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학을 요약하려고 그들의 복음서를 신학적 논문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복음서 저자들이 신학자들임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서가 이미 세상 속에서 일어난 사건의 역사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해석하는 신학 역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는 예수님을 증언하고 예수님의 역사적 사실을 증언하는 책이다. 복음서는 구원 역사의 정점에 있는 책이다. 우리는 복음서 신학을 고려할 때, 구원 역사의 시간표 가운데 저자들의 위치에서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복음서에서 어떤 문제는 아직 발전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까지를 기록하고 그 외의 어떤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서는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 위에 부어질 것이라는 약속과 그 기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에는 성령 강림으로 인한 복된 역사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의 나머지 책은 구원 역사 가운데 복음서와 다른 곳에 위치해야 한다.
요약하면, 신약 성경의 어느 책도 신약에서 가르쳤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없다. 신약 성경의 모든 책은 완전하고 정확하다. 그러나 각자는 부분적이며 단편적 증거를 갖고 있다. 신약 성경의 모든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증언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각각의 책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철저하고 남김없이 증언하는 것은 아니다.
[ 이 글은 동남성경연구원(http://www.kosebi.org/bible/data/b.htm)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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