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해석학에 대한 세 가지 관점(1) 본문
1. 저자 중심의 해석학
전통적인 해석학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바르게 파악하는 것을 해석의 목표로 삼았다. 성경을 대하는 주해자의 목표는 하나님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의도를 찾는 것이다. 에베소서를 해석하려면 바울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 의도를 찾아야 하며 누가복음을 해석하려면 본문에 나타난 누가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창세기 3:15절에 주어진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모세 때와 다윗 때와 베드로의 시대가 다르지 않다. 저자가 원하는 의도를 무시하고 본문과 독자의 눈으로만 본문을 읽는 것은 해석의 주체를
상실하는 것과 다름 없다.
저자 중심의 해석학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저자가 의도하는 의미가 과연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의도하는 것이 있다면 몇 개인가? 한 본문에 한 가지 의도를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한 본문에 여러 가지 의도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가? 필자는 한 본문에는 하나님이 의도한 하나의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는 시대나 독자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고정된 의미라는‘저자가 의도하는 한 의미’(author’s single intended meaning)라는 의견을 지지한다.
저자 중심의 해석학을 문학에서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E. D. 허쉬(Hirsch)가 있다. 그는 Validity in Interpretation 와 The Aims of Interpretation 라는 두 책에서 해석의 중심축을 저자에 두는 해석학의 당위성에 대하여 논증한다. 허쉬는‘의미’(meaning) 와‘중요성’(significance)이란 공식으로 해석을 시도한다. 본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저자가 의도한 본래의 의미(author’s original meaning)와 상황과 독자에 따라 그 중요성(significance)이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
의 구분에 따르면 저자가 의도한 의미는 하나이며 영구히 변할 수 없지만 독자에 따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본문을 대할 때 다가오는 중요성은 변할수 있다는 것이다. 허쉬는 다음과 같이 의미와 중요성을 구분한다.
의미란 본문에 나타난 것이며 저자가 특정한 지시부호를 연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의도하는 것이다. 의미란 그 부호들이 나타
내는 것을 말한다. 한편 중요성이란 사람, 관념, 상황, 혹은 상상할 수 있는 무엇이든지 간에 의미와의 관계이다.
Hirsch는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의미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의 차이가 아니라 본문의 중요성이 다른 것이라 주장한다. 의미와 중요성을 구분하지 못할 때 해석의 이론에는 거대한 혼동이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의미와 중요성의 구분은 보수주의 성경 해석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구약학자인 월터 카이저(Walter C. Kaiser)는 허쉬의 이러한 구분이“우리를 해석학적 무정부상태와 주관적인 상대주의에서 구원해 줄”이론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카이저는 Toward an Exegetical Theology에서 허쉬의 해석학에 근거하여‘의미’와‘적용’으로 나누어 바람직한 본문 주해를 시도한다.
허쉬의 구분이 지니는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주어진 문자의 의미가 고정된 것이기에 이 구분으로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반응을 구분할 수 있겠지만 성경의 계시 가운데는 의미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발전되어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 이 고민은 로버트 스타인(Robert Stein)의 A Basic Guide to Interpreting the Bible에서 어느 정도 해결을 보여준다. 스타인은 의미와 적용의 두 가지 구분을 ‘의미’(meaning)와 ‘함의들'
(implications) 그리고 ‘중요성’(significance)으로 나눈 것이다. 스타인의 구분은 다음과 같다.
의미: 의미란 저자가 사용한 단어들(공유할 수 있는 상징체계)을 통해 전하고자 의도하는 그 의미.
함의들: 함의들이란 비록 저자가 알지는 못하지만 저자가 의도하는 의미 안에 정당하게 놓여있는 본문의 의미들.
중요성: 중요성이란 독자가 하나의 본문의 의미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
허쉬의 의미는 스타인에게서‘의미’와‘함의들’로 세분화된다. 스타인은“함의란 저자의 의미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함의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발견할(discover) 뿐이다”라고 지적한다. 즉 이 함의들은 새로운 의미가 아니라 의미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 즉 의미에 내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후대의 의미가 본래의 의미와 전혀 다른 것이 나올 수는 없다는 말이다. 성경의 계시 발전을 인정하는 해석자는 한 본문이 시간에 따라 그 의미가 더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발견한다. 특히 구약의 메시아를 예언하는 본문은 예언과 성취라는 구도 속에서 초기의 예언이 더욱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을 발견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발생한다. 저자가 자신도 모르는 것을 의도할 수있는가? 허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저자가의도하지않는것을 어떻게 의도할 수 있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저자가 의도하지 않는 것을 의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그 의미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의도할 수는 있다.… 의미와 의미를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저자의 의미가 복잡할 때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그 의미의 복잡한 것에 다 관심을 줄 수는 없다.”
이러한 주장은 저자가 자신도 모르는 것을 기록할 수 있다라는 해석에 쐐기를 박는다. 저자는 모든 의미의 발전을 알 수는 없어도 최소한 자신이 기록하는 것은 의도를 가지고 기록한다는 말이다. 독자들은 저자의 이 의도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 저자 중심의 해석학을 주도하는 케빈 밴후저는 Is There a Meaning in This Text? 라는 방대한 해석학 책에서 저자 중심의 해석학을 허쉬의 이론에 근거하여 주장한다. 그는 오늘날 독자가 본문을 통해 저자가 의도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해석자는 자신의 생각을 지니고 본문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또한 본문을 의미의 최종 단위로 생각하고 본문의 문자적 의미만을 파악하려는 시도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저자 중심의 해석은 일반 문학뿐 아니라 성경해석에서 더욱 중요하다.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저자의 의도를 알기 위해 본문의 문자적 의미와 콘텍스트를 연구할 뿐 아니라 기도하게 된다. 성령께서 영감으로 기록한 본문은 성령의 조명이 있을 때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류응렬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설교학)의 논문 『성경적 설교를 위한 저자 중심의 해석학』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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