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삶
예레미야 22:10-19 (하나님을 아는 것) 본문
예레미야 22:10-19 (새번역)
* 대조 / 목록 / 요시야 - 여호와김
* 하나님을 아는 것
-. 법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
-.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은 법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과 악압받는 사람들의 시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는 것이다.
어제 본문과 같이 나라의 지도자와 리더들, 백성들은 모두 공평과 정의를 철저히 실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손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주고,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며, 무죄한 사람릐 피를 흘리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히 순종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다.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지식적인 앎이나, 단순 반복적인 아멘의 화답으로, 입술의 고백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아무때나 할렐루야를 남발하고, 아멘을 입에 달고 살아도, 그 믿음의 실천이 없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믿고 있는 그 믿음의 철저한 실천이 없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고, 믿음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1:3-4)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순종함으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지, 악세사리로 주신 것이 아니다. 폼으로 가지고 다니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스스로 지라고 주신 것이지, 목에 걸고, 귀에 걸고, 핸드폰에 부적처럼, 악세사리처럼 걸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그 앎을 보여야 할 것이며, 그것은 하니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보이는 것이요, 드러나는 것이요, 누구나 아는 것이요, 누구나 보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은 법과 정의를 실천하고,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는 것이다.
사회적 공평과 정의의 실천이다. 삶을 퉁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적극적인 결단과 실천이 따르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비로소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여호와김 같이 자신의 궁전을 짓고, 그 안에 안주하기 위해, 자신의 만족을 위해, 많은 돈과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요, 그 결과는 오늘 본문과 같이 비참할 것이다.
이 말씀은 혹 작금의 교회의 실태에 빗대어 적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큰 교회 건물을 짓겠다고, 많은 헌금을 모으고, 성도들의 보증을 통해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고 해서,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건물도 넓히고, 공간들도 크게 만들고, 많은 창문을 달고, 최고급 목재와 대리석으로 단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서로 집짓기를 경쟁한다고 해서 더 좋은 하나님의 백성, 더 좋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이런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때에는 그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나의 삶 가운데 내가 처리해야 할 법과 정의 실천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내가 해결해야 할 가난한 사람과 억업받는 사람의 사정이 무엇인지 돌아 보아야 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 가능한 부분에서 부터, 비록 작은 일 일지라도, 조금씩 그러나 철저하게 하나씩 처리해 나갈 때 나는 비로소 "나는 하나님을 안다" 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대조 / 목록 / 요시야 - 여호와김
요시야 | 여호와김 |
법과 정의를 실천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 |
불의로 궁전을 짓고 불법으로 누각을 쌓으며 동족을 고용하고도 품삯을 주지 않음 불의한 이익을 탐함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함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함 |
형통하였다 잘 살았다 |
사람들은 그를 끌어다가 예루살렘 성문 밖으로 멀리 내던지고 마치 나귀처럼 묻어 버릴 것 |
* 하나님을 아는 것
-. 법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
-.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은 법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과 악압받는 사람들의 시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는 것이다.
어제 본문과 같이 나라의 지도자와 리더들, 백성들은 모두 공평과 정의를 철저히 실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손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주고,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며, 무죄한 사람릐 피를 흘리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히 순종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다.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지식적인 앎이나, 단순 반복적인 아멘의 화답으로, 입술의 고백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아무때나 할렐루야를 남발하고, 아멘을 입에 달고 살아도, 그 믿음의 실천이 없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믿고 있는 그 믿음의 철저한 실천이 없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고, 믿음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1:3-4)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순종함으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지, 악세사리로 주신 것이 아니다. 폼으로 가지고 다니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스스로 지라고 주신 것이지, 목에 걸고, 귀에 걸고, 핸드폰에 부적처럼, 악세사리처럼 걸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그 앎을 보여야 할 것이며, 그것은 하니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보이는 것이요, 드러나는 것이요, 누구나 아는 것이요, 누구나 보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은 법과 정의를 실천하고,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는 것이다.
사회적 공평과 정의의 실천이다. 삶을 퉁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적극적인 결단과 실천이 따르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비로소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여호와김 같이 자신의 궁전을 짓고, 그 안에 안주하기 위해, 자신의 만족을 위해, 많은 돈과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요, 그 결과는 오늘 본문과 같이 비참할 것이다.
이 말씀은 혹 작금의 교회의 실태에 빗대어 적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큰 교회 건물을 짓겠다고, 많은 헌금을 모으고, 성도들의 보증을 통해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고 해서,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건물도 넓히고, 공간들도 크게 만들고, 많은 창문을 달고, 최고급 목재와 대리석으로 단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서로 집짓기를 경쟁한다고 해서 더 좋은 하나님의 백성, 더 좋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이런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때에는 그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나의 삶 가운데 내가 처리해야 할 법과 정의 실천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내가 해결해야 할 가난한 사람과 억업받는 사람의 사정이 무엇인지 돌아 보아야 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 가능한 부분에서 부터, 비록 작은 일 일지라도, 조금씩 그러나 철저하게 하나씩 처리해 나갈 때 나는 비로소 "나는 하나님을 안다" 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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