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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의 성경해석 본문

疎通 2 (with YHWH)/Grasping His Story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경해석

에제르 2012. 9. 1. 12:34


 

성경의 사람, 에드워즈

(목회와 신학 2012년 9월호)



‘성경의 사람’으로 불린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깊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그 어떤 책보다 성경에서 가장 큰 기쁨을 누린다. 성경을 읽으면 그 안에 있는 모든 말씀이 내 마음을 만지는 것 같다. … 성경의 거의 모든 문장은 경이로움으로 충만하다”(“Personal Narrative”,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16, p. 797)고 했다.
에드워즈는 이런 고백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바로 ‘성경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성경의 맛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곤 했다.
“꿀의 달콤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꿀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들은 사람이 아니라 그 꿀을 직접 맛본 사람이다. … 그러므로 아무리 감미롭고 눈부신 아름다움도 설명이나 소문만으로는 알 수 없다. 눈으로 볼 때 비로소 그것을 진정으로 알 수 있게 된다. 한 번 보는 것이 백 마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A Divine and Supernatural Light”,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17, p. 414). 에드워즈는 꿀송이보다 단 성경을 직접 맛보아 체험함으로써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에드워즈는 성경에서 어떤 맛을 경험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토록 꿀처럼 단맛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맛이었다. 에드워즈는 이에 대해서 “성경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보물 창고와 같다”(“Through Knowledge of Divine Truth”,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22, p. 97)고 했다. 그는 성경에 대해 언급한 설교에서도 “성경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보물 창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 성경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마치 광산에서 금과 은을 캐는 사람들처럼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Through Knowledge of Divine Truth”, pp. 97-98).
에드워즈는 성경의 맛, 즉 하나님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기에 목회자요 부흥가요 신학자로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하루 13시간 정도의 시간을 성경을 묵상하는 데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깊은 성경 묵상을 기반으로 방대한 신학 저술과 설교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에드워즈의 이런 모습을 통해 “우리는 정말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보물 창고인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대로 캐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에드워즈는 자형인 벤저민 피어폰트 목사에게 선물 받은 ‘여백 성경(Blank Bible)’에 본문에 대한 주석을 남겼다. 이 성경은 작은 크기의 킹제임스 번역본으로 넓은 여백이 어우러져 있었는데 에드워즈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가 신학적 주해가 떠오를 때면 그 내용을 여백에 기술했다. 이외에도 그는 신학적 묵상들(Miscellanies)을 따로 기록해놓는 습관이 있었고 이렇게 모아놓은 메모들을 신학 저술이나 설교 준비에 사용하곤 했다.


성경 해석의 두 가지 전제

에드워즈의 성경 해석을 살펴보기 전에 생각해야 할 두 가지 전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성도에 대한 에드워즈의 독특한 생각이다. 먼저 그는 하나님을 의사소통하는 존재로 생각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고 나타내며 자신이 가진 행복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다. 즉 에드워즈가 이해하고 경험한 하나님은 높은 보좌에 앉아 고자세로 침묵하거나 인간들을 무시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말씀하며 자신의 뜻을 알리신다. 따라서 창조와 구속 사역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며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그의 지적인 창조물(intelligent being)인 인간과 의사소통하신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 바로 성경이다. 에드워즈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사역을 알리신다고 보았다.

둘째로 에드워즈는 주님을 믿고 섬기며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성도라면 성경을 보는 ‘새로운 감각’을 통해 ‘성경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성령의 내주를 통해 중생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즉 성령이 함께하시면 성경의 내용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에드워즈에게 회심은 단지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영혼과 감정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즉 회심이나 중생을 경험한 성도는 불신자가 갖지 못하는 새로운 감각을 성령의 역사로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감각을 통해 성경과 자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언어와 계시를 이해하고 그분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영적인 실재를 직접 맛보며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성경의 꿀맛’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에드워즈는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이 목회자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모두에게 요구되는 일임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조건과 상황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또한 학식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 학식 있는 자와 없는 자 모두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공부해야 한다”(“Through Knowledge of Divine Truth”, p. 91).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할 때 새로운 감각의 원천자 되는 성령 하나님의 조명과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문자적·역사적 해석    

그렇다면 ‘성경의 사람’ 에드워즈는 과연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했을까? 기본적으로 에드워즈는 성경의 ‘문자적·역사적’ 해석을 택했다. 그가 살던 18세기에는 합리성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계몽주의 영향으로 이신론자들(Deists)이 성경에 대한 비평적인 해석 방식을 채택하여 기적이나 구약의 예언처럼 초자연적 내용들을 성경에서 제거하려고 했다. 에드워즈는 이런 이신론자들에 대항하여, 비합리적이고 이해가 불가해보이는 가르침이라도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라면 하나님이 주신 진리이므로 절대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성경의 초자연적인 내용들을 비유와 상징으로 해석함으로써 원시 시대의 산물로 치부하려는 이신론자들의 해석 방식에 대한 반박이었다.
에드워즈는 기본적으로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통해 일차적으로 본문을 해석하고자 했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초자연적인 역사와 기적, 예언 등의 기록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성경의 각 저자가 의도하는 내용과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기반으로 한 신학적 사상들, 하나님의 영역 주권과 선택, 원죄론, 칭의론, 종말론 등이 아무리 신비스럽고 비합리적인 것들이라 할지라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문자적 해석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에드워즈는 성경의 원어적 의미에 접근하고 그 본래적 의미를 당시 시대적 상황과 연계해 그 의미를 분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례로 에드워즈는 출애굽기 12:38을 주해하면서 킹제임스 버전에서는 “혼합된 다수(mixed multitude)”로 번역된 히브리어 문구를 “엄청난 혼합(a great mixture)”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가 보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던 이유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위선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에드워즈는 성경의 바른 해석을 위한 원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를 지속적으로 공부하면서 단어의 의미를 정리한 노트들을 남기기도 했다.
이어서 에드워즈는 역사 분야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성경의 역사적·지리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제공한다. 에드워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진리의 내용과 일치해야 하는 계몽주의 시대에 살았다. 즉 그는 기독교가 역사적 사실들에 기초하지 않고는 진리를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성경의 내용이 전개되는 고대 근동의 역사와 지리적 설명, 문화적 관습 등이 담긴 책들을 부지런히 읽고 이를 성경을 해석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이용했다.
한 예로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설교하는 부분에서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그리스도가 태어나던 해까지 장기간에 걸쳐 곳곳에서 원수들을 격파하고 로마 제국의 권력을 세웠습니다. 원수들은 속수무책으로 정복당하고 그의 권력과 영광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만사가 평화롭게 진행됐습니다.
그 증거 중 하나로 로마는 야누스 신전의 문을 닫았습니다. 야누스 신전은  그들 사이에서 로마 제국 전역에 보편적 평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공언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탄생하던 바로 그해에 시작된 이 보편적 평화는 그리스도가 성전에서 선생들과 논쟁을 벌이던 때까지 12년 동안 계속됐습니다”(“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9, p. 279).
이처럼 에드워즈는 기독교의 진리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드러내고자 했으며 해박한 역사적 사실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역사가 하나님의 사역이 이뤄지는 거대한 활동 무대이기에 하나님이 행하신 구속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적 해석

에드워즈는 문자적·역사적 해석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는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차원이 있음을 알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인간의 언어와 역사적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는 탁월한 신적 부분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에드워즈는 성경의 원어와 고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자연 과학자들에게 자연 현상에 대한 연구가 유익한 것처럼 가치 있는 작업임에는 분명하나 그것으로만 성경 해석 작업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는 성도들이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만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영적인 차원을 포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에드워즈의 영적 주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그의 “모형론(typology)”이다. 에드워즈의 모형론은 그의 작품인 Images of Divine Things(신적인 것들의 이미지), Types(모형들), Types of the Messiah(메시아의 모형들)에 잘 나타나 있다. 에드워즈는 구약에 나타나는 사건들과 인물들을 신약에서 이뤄질 성취를 기다리고 있는 모형들로 봤다. 대표적인 예가 신명기 34장에 기록된 모세의 죽음이다.
모세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광야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대해서 에드워즈는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한계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구약 율법의 한계를 영적으로 암시한다고 설명한다. 즉 모세가 상징하는 율법은 인간들에게 구원의 축복을 준비시키는 역할만 할 뿐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완성하거나 축복하는 데 충분한 조건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죽음을 히브리서 7:19과 연결하면서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한다”(“Blank Bible”,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24, p. 317)는 말로 설명을 맺고 있다.
이외에도 에드워즈는 이스라엘이 번성했던 솔로몬 왕국을 마지막에 하나님이 다스리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예표로 봤다. 솔로몬의 통치 시대에 어떤 대적이나 원수도 솔로몬 왕과 그 왕국에 감히 도전하거나 맞서지 못했던 것처럼 메시아 시대가 도래하면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와 그분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대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솔로몬 왕국 시대의 부유함과 강성함을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백성이 얻게 될 축복의 예표로 봤다.  
에드워즈의 모형론에서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모형론의 영역을 성경에만 제한하지 않고 자연과 역사 안에도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예표들을 준비해두셨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연 세계에서 하나님은 열등한 것들을 우월한 것들의 유비나 이미지로 만드셨다”고 말했다(“Typological Writings”,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11, p. 55).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물질 세계 전체는 영적 세계나 천상 세계의 그림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에드워즈가 이해하기에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 속에서 모든 창조물 가운데 조화와 균형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유용한 도구로 효과적인 계시를 그 안에 두신다. 따라서 자연에 존재하는 사물과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메타포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독특한 관점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다음과 같이 강물에 비유하며 설명했다. “강물은 매일 흘러 내려가도 결코 없어지거나 그치지 않는 것처럼 성령 하나님도 그렇게 끊임없이 의사소통하며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다. 즉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성령 하나님은 성경에서 강물로 비유되고 있으며 강물에 의해 자라고 양분이 공급되는 나무는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성도들을 가리킨다”(“Typological Writings”, pp. 54-55). 여기서 에드워즈는 성도들에 대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하고 지속적인 축복을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로 표현하고 있다.
또 다른 부분에서 그는 “번개가 지닌 맹렬함과 열의 힘은 하나님의 분노가 지니는 엄청난 파괴력과 비참함을 드러내는 모형이 된다”고 했다(“Typological Writings”, p. 135). 에드워즈는 자신의 유명한 부흥 설교인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에서도 빛과 열을 하나님의 심판에 비유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누에와 같은 하찮은 곤충까지도 우리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하나님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에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누에는 죽음으로써 화려한 비단옷을 제공해준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누에가 되신 분이다. 그분의 죽음으로 인해 성도들은 의의 옷을 입게 된다. 영광의 의복을 입는다”(“Typological Writings”, p. 59). 에드워즈는 자연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창조물들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영적 의미를 나타내는 이미지들로 이해했다. 
그는 자연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인 역사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의도가 드러난다고 믿었다. 영광스러운 구속사가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일례로 에드워즈는 당시에 과학의 발달로 발명된 망원경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증거로 이해했다. “하늘과 별들을 더욱 가까이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의 발명은 천상에 대한 지식을  보다 풍성하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모형이요 전조다”(“Typological Writings”, p. 101).
또한 에드워즈는 당대 미국에서 무역이 성행하는 것을 마지막 때의 예표로 보면서 “무역 코스의 변화로 인한 미국의 수출은 곧 이 땅이 세계 각처로 영적인 것들을 수출하게 되리라는 것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Typological Writings”, p. 101). 앞으로 미국이 상품과 같은 물질만이 아니라 복음과 진리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영적인 복음 수출국이 되고 이를 통해 세계 선교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던 것이다.
이처럼 에드워즈는 자신만의 독특한 모형론을 통해 성경을 벗어난 창조 세계와 역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

세 번째로 에드워즈의 성경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다. 에드워즈는 모든 성경 해석의 중심에 바로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특별히 Types of the Messiah(메시아의 모형들)이라는 자신의 작품에서 구약의 인물들과 그들의 일생, 여러 사건들은 모두 앞으로 오실 메시아와 그분이 이루실 사역을 미리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에드워즈는 메시아를 예표하는 대표적인 구약 시대 인물로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삼손, 다윗, 솔로몬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인 해석과 같이, 에드워즈는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적인 예표로 생각했는데 다음과 같은 그의 해석은 조금 생소하다. “요셉과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다. 요셉은 야곱이 그의 인생 마지막 때에 얻은 아들이다. 그런데 예언들에 나타난 메시아는 세상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정착을 이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드러난다. 이처럼 예언의 말씀들은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고 있다”(“Typological Writings”, p. 228).
이와 같이 에드워즈는 요셉에 대한 일반적인 서술뿐 아니라 요셉의 출생 시기를 통해서도 요셉을 메시아에 대한 시대적 예표로 연결시킨다. 구약의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메시아에 대한 예표적 사건으로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통치에서 벗어나 출애굽하는 장면은 사탄의 통치에서 해방돼 구원받는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예표한다고 봤다. 특별히 그는 고린도전서 10:1-2 말씀을 인용하면서 세례의 물이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에 홍해가 바로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한다고 말했다(“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9, p. 177).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던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택한 백성을 안식과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봤다.
삼손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 부분도 흥미롭다. “사사기 14:14에 기록된 삼손의 수수께끼는 가장 놀랍게 성취됐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는 말씀은 삼손이 자신을 죽음에 내어놓음으로써 살아 있을 때보다 원수들에게 더 큰 멸망을 안겨주었음을 나타낸다. 삼손처럼 그리스도는 바로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갖고 재미 삼아 노는 수많은 원수를 멸망시키셨다”(“The Excellency of Christ”,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19, p. 580).
또한 에드워즈는 자신의 모형론적 해석을 바탕으로 고래의 배 속에서 사흘 동안 지내다가 나온 요나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사흘’이란 숫자를 매개체로 요나와 그리스도를 연결한 것이다.
다윗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사무엘상 22:1-2 말씀에 기초해 다윗이 아둘람 굴과 광야에서 환란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바로 예수가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권세 잡은 자들을 위한 주님이 아니라 가난하고 포로 된 죄인들의 주님이 되셨음을 드러내는 예표라고 주장한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고난과 사역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예수의 사역을 예표한다는 에드워즈의 적극적인 해석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에드워즈는 구약에 기록된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다소 무리인 것처럼 보여도, 성경 곳곳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최대한 듣고자 했던 것이다.   


성경 해석을 통한 설교

에드워즈는 성경 해석을 통해 얻은 결과들을 하나의 신학적 교리로 정리하여 설교하고 실생활의 적용 문제로 풀어내려고 시도했다. 에드워즈의 설교문은 현재 1,200편 정도 존재하는데 이는 그가 남긴 작품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분량이다. 에드워즈는 성경 해석에만 그치지 않고 해석으로 드러난 진리와 깨달음을 신학적 내용의 교리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를 실천의 문제에 적용해 설교에 그대로 반영했다. 이는 당시 청교도들의 일반적인 설교 순서인 본문-교리-적용의 용례를 따른 것이긴 하지만 실생활에 대한 관심과 강조가 설교 가운데 깊이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에드워즈는 목회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성경의 본문을 잘 해석하고 가르쳐서 성도들이 가르침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구체적인 교리와 적용의 문제를 고민하며 설교에 반영했던 것이다.
에드워즈는 고린도전서 13:8-10을 근거로 “천국을 사랑의 나라”라고 해석하며 설교한다. 여기서 그는 천국이 사랑의 나라이기에 구체적으로 인간 사회에 있는 분열과 다툼, 싸움은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랑의 문제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성도들의 생활에서 드러나야 하는 천국 백성의 의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사도행전 10장의 백부장 고넬료 이야기를 본문으로 택한 “풍부한 사랑의 행위”란 설교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여기서도 고넬료의 구제 사역을 성도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전제하면서 “구제 사역을 많이 하는 것은 영적인 은혜를 얻는 방법”이라고 교리적인 가르침을 설정한다.
이어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그가 이방인임에도 많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들도 자신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이웃에게 드러내야 하며 이런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고 적용했다.
수많은 설교와 저서를 살펴보면 에드워즈는 단지 말씀 해석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나 가르침을 강조하지 않고 실생활에 대한 적용 문제에 집중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솔하고 정직하게 서려 했던 ‘성경의 사람’이었다. 에드워즈의 뜨거운 열정과 노력이 이 시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많은 귀한 사역자들을 통해서도 계속되기를 소망한다.


필자 정보 - 조현진   
  한국성서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총신대학교(B.A.), 총신신학대학원(M.Div.), 서울대학교 대학원(M.A), 미국 트리니
  티복음주의신학교(Ph.D)에서 공부했다.